장작 벼늘을 바라보며 / 법정 스님


장마가 오기 전에 서둘러 땔감을 마련했다. 한 여름에 땔감이라니 듣기만 해도 덥게 여길지 모르지만, 궁벽한 곳에서는 기회가 있을 때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살아가는 지혜다.

오두막에 일이 있을 때마다 와서 도와주는 일꾼이 지난 봄에 일을 하러 올라왔을 때, 땔감이 다 되어 간다는 말을 했더니, 며칠 전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나무를 실어다 놓았다. 어디서 구했는지 땔감으로는 가장 불담이 좋은 참나무다.

어제 오늘 통나무를 난로와 아궁이에 지피기 좋도록 톱으로 잘라 함께 벼늘을 쌓았다. 제재소에서 피죽만 한 차 더 실어다 놓으면, 두어 해 땔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운동 삼아 그때그때 통장작을 도끼로 패서 쓰면 될 것이다.

이제는 일반 가정에서 아궁이에 나무를 지필 일이 거의 사라져, 땔나무에 대한 기억과 관심도 소멸되어 가지만, 산촌의 재래식 단독 가옥에서는 땔나무에 대한 필요가 현재에도 진행 중에 있다.

지난날의 기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마당 한쪽이나 뒤란에 나뭇벼늘이 그득 쌓여 있으면 저절로 집 안에 훈기가 감도는 것 같다. 그리고 장작 벼늘의 질서 정연한 모습은 그 집안의 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가끔 내 글에 일꾼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20리 밖에 사는 믿음성 있고 착실한 30대 젊은이다. 내가 이 오두막에 온 이듬해 봄 묵은 밭에 나무를 심기 위해 산림조합에서 묘목을 한 차 사서 싣고 와야 할 일이 있어, 제재소에 문의를 했더니 한 젊은이를 소개해 주었다. 처음 전화로 사정 이야기를 했을 때 들려오는 목소리에 믿음이 갔다.

그의 소형 트럭으로 묘목을 실어온 다음날, 나무를 심기 위해 그가 다시 올라와 일을 하면서 나더러 아무개 스님이 아니냐고 물었다. 내 글을 읽고 책에서 본 얼굴을 기억해 낸 모양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혼자만 알고 있지 아무한테도 발설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당부를 해두었다.

그때의 당부는 오늘까지도 잘 지켜지고 있다. 그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내 거처를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11녀의 가장인 그는 머리가 총명하여 무슨 일이든지 거의 만능이다. 지난 봄 흙방을 만든 것도 그의 솜씨다. 부양가족이 있어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하면서도 여가만 있으면 책을 가까이 하는 중심이 잡힌 사람이다. 그는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외로움을 타는 가슴이 따뜻한 사나이기도 하다.

이 외진 오두막에 일이 있을 때마다 올라와 기꺼이 도와주는 신실한 그가 없었다면, 내 오두막 살림살이는 너무나 팍팍할 뻔했다. 그를 만난 인연에 나는 안으로 늘 고마워하고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인간의 신의와 유대를 그만큼 굳게 맺어주는 일이기도 하다.

뜰에 잡초가 무성해졌는데도 나는 그대로 놓아둔 채 크게 자란 것들만 뽑아냈다. 내 성미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뜰을 보고 이상히 여길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뜰은 늘 말끔히 풀이 뽑히고 정갈하게 비질이 되어 있었다.

나이 먹어가는 탓인지, 게으른 변명인지, 요즘에 와서는 내 생각이 많이 달라져 가고 있다. 그대로 두어도 좋을 것에는 될 수 있는 한 손질을 덜 하고 그대로 바라보기로 한 것이다. 있는 사물을 그대로 본다는 것은 내 자신과 대상을 수평적으로 같은 자리에서 대함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는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들과 함께 살고 있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 그 존재 이유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이 사람 표준으로만 생각하고, 둘레의 사물을 인간 중심의 종속적인 관계로 여기기 때문에 지금 지구촌에 온갖 이변이 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잡초만 해도 그렇다. 논밭에 자라난 잡초는 곡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뽑아내지만, 잡초 그 자체는 결코 잡초가 아니라 그 나름의 존재 이유를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커다란 생명의 잔치에 함께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옛사람은 이런 말을 하고 있다.

풀이 걸음을 방해하거든 깎고 나무가 관을 방해하거든 잘라내라. 그 밖의 일은 자연에 맡겨두라. 하늘과 땅 사이에 서로 함께 사는 것이야말로 만물로 하여금 제각기 그 삶을 완수하도록 하는 것이니라.” 

<오두막 편지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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