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떠나기 책 머리에 / 법정 스님

양지쪽에 앉아 부엌 아궁이에서 재를 쳐내는 당글개(고무래)를 하나 만들었다. 땔감으로 지난 가을 읍내 제재소에서 구해온 피죽 판자를 톱과 도끼만으로 똑닥거리면서 만들었다. 생활에 소용되는 이런 도구를 손수 만들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내 마음은 지극히 무심하고 즐겁다. 불일암 시절에도 손수 만들어 20년 가까이 사용했었다.

내가 만약 시끄러운 세상에 살면서 직업을 선택하게 됐다면, 청소차를 몰거나 가구를 만드는 목수 일을 하게 됐을 것이다. 청소차를 몰고 다니면서 묵묵히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을 대하고 있으면, 절이나 교회에서 행하는 그 어떤 종교의식보다도 훨씬 신선하고 건강하고 또한 거룩하게 느껴진다.

연장을 가지고 똑닥거리는 목수일은 만들어 가는 재미가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재미가 있어야 순간순간 사는 일이 즐겁고 그 자체가 삶의 충만이다. 그리고 투박하고 서투르지만 손수 만든 도구나 가구를 쓰고 있으면 그때마다 삶의 잔잔한 기쁨이 우러나온다.

나는 글을 쓰는 일보다는 읽는 쪽이 훨씬 즐겁다. 만약 글을 읽을 수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싶다. 읽지 않으면 내 감성과 지성에 녹이 슬어 삶에 탄력과 향기를 잃게 될 것이다. 읽어야 생각을 하게 되고 생각을 해야 날마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시작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무료하고 따분하며 지루할 것인가. 이 새로운 시작을 통해서 우리는 신비스럽고 영원히 새로운 삶을 체험하게 된다.

나 같은 게으름뱅이는 마감 날이 없다면 한 줄의 글도 쓰지 않게 될 것이다. 약속한 마감 날이 코앞에 바짝 다가서야 책상 앞에 앉아 원고지를 펼치고 만년필에 잉크를 채운다. 무엇을 쓸 것인가 그 주제가 결정되면, 어느 때를 가리지 않고 단참에 써버린다. 그러나 무슨 이야기를 쓸 것인지 그 주제가 설정되지 않으면 공연히 뜰에 나가 서성거리거나 나무에 전지를 하고 손톱도 깎고 묵은 일기장을 들추기도 한다. 잘은 모르지만 엄마들이 아기를 낳을 시간이 임박해지면 이런 기분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산중에서 단순하고 단조롭게 살고 있는 나는, 바로 오늘 아침 일어난 일이나 어제 겪은 체험으로부터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 간다. 내 삶 자체가 구체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글은 써지지 않는다. 활자화된 글은 물론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이 읽게 되지만, 나는 글을 읽을 대상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가까운 친지에게 편지를 쓰듯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리고 쉬운 단어를 골라가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작년 4월 하순부터 나는 거처를 강원도의 한 두메산골 오두막으로 옮겨 왔다.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싶어서 묵은 둥지에서 떠나온 것이다. 조금은 불편하지만 문 두드리는 사람이 없어 지낼 만하다. 내 오두막의 둘레는 요즘 하얀 눈이 자가 넘게 쌓여 있고, 청랭한 공기 속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처마 끝에 달아놓은 풍경이 이따금 지나가는 바람과 더불어 이야기하는 소리뿐이다. 몇 걸음 걸어 개울가에 이르면 두껍게 얼어붙은 얼음장 밑으로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내 뼛속에까지 스며든다. 나는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이 개울물 소리가 참 좋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나가서 귀를 기울인다.

이 잡문집에 실린 63편의 글은 <텅 빈 충만> 이후에 쏟아놓은 내 삶의 부스러기들이다. 책을 만드는 데에 이번에도 샘터사 출판부의 친구들이 수고를 해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19931水流山房에서 

法頂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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