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원去遠, 거원巨源, 거원육십화蘧瑗六十化, 거원장회숙야巨源長懷叔夜, 거원지비蘧瑗知非

거원[去遠]  멀리 떠나다. 아주 먼 곳으로 떠나다.

거원[巨源 거원은 동진(東晉) 때의 명상(名相)이며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기도 한 산도(山濤)의 자이다. 그는 나이 40에 겨우 군주부(郡主簿)가 되었으나 뒤에 삼공의 지위까지 오르는 영광을 누렸으며, 79세로 세상을 떠나자, 황제가 조서를 내려 조복(朝服)과 전(), () 등을 포함한 많은 장사 지낼 물품을 하사하게 하였다. 그는 또 5형제의 아들을 두었는데 모두 훌륭하였다. <晉書 卷四十三 山濤列傳>

거원[蘧瑗]  거원은 춘추 시대 위()나라 영공(靈公) 때의 현대부(賢大夫), 세 공()을 섬겼다. 그의 자가 백옥(伯玉)이므로 흔히 거백옥(蘧伯玉)이라고 부른다.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 도가에서는 무위이치(無爲而治)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시호는 성자(成子)이다. 원나라 때 내황후(內黃侯)에 봉해졌다. 논어(論語) 헌문(憲問), 거원이 공자에게 사신을 보내오자 공자가 그 사신과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었고 사신이 나가자 훌륭한 사자라고 칭찬한 대목이 있고, 장자(莊子) 칙양(則陽)거백옥은 나이 육십이 되는 동안 육십 번이나 잘못된 점을 고쳤다.[蘧伯玉行年六十而六十化.]”라고 하였고,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나이 5049년 동안의 잘못을 깨달았다.[年五十而知四十九年非.]”라고 하여, 늙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개전(改悛)의 노력을 기울였음을 일컬은 바 있고,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나라에 도() 있으면 나오고 도 없으면 물러간다.”라고 하였다.

거원비[蘧瑗非]  거원(蘧瑗)은 춘추 시대 위() 나라의 현대부(賢大夫)로서, 거백옥(蘧伯玉)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나이 5049년의 잘못됨을 알았다[年五十而知四十九年非]는 유명한 고사가 전해 온다. <淮南子 原道> 참고로, 이백(李白)의 시 심양자극궁감추작(尋陽紫極宮感秋作)()의 당거(唐擧)도 좇기 귀찮고, ()의 사마계주(司馬季主)도 찾기 부끄러워. 사십구 년 그릇된 인생, 한번 가면 돌이키지 못하네.[懶從唐生決, 羞訪季主卜. 四十九年非, 一往不可複.]”라는 구절이 있다.

거원육십화[蘧瑗六十化]  거원(遽瑗)은 춘추 시대 위()나라의 현대부(賢大夫) 거백옥(蘧伯玉)의 본명인데, 공자가 위나라에 갔을 때 주인했던 인물이다. 거원이 나이 육십이 되었을 때 그동안의 잘못을 깨닫고 고친 것은 그 덕을 진전하는 공부가 늙어서도 게을러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장자(莊子) 칙양(則陽)거백옥은 나이 육십이 되어 변화되었다.[蘧伯玉行年六十而六十化]”라고 한 데서 온 것으로, ()에 대해 주희(朱熹)사라져 막힘이 없는 것[消融無固滯]’이라고 풀이한 반면, 요로(饒魯)는 거원의 기질이 육순의 나이에도 계속 변화한 것으로 보았다. <論語集註大全 卷14 憲問 注> 한편 조선(朝鮮)의 정암(正菴) 이현익(李顯益), 주희의 견해는 거원을 대화(大化)의 경지로 보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이에는 미치지 못했을 것이라며 요로의 견해를 수용하였다. <正菴集 卷10 雜著 論語說下>

거원장회숙야[巨源長懷叔夜]  거원(巨源)은 진() 나라 산도(山濤)의 자()이고 숙야(叔夜)는 혜강(嵇康)의 자()인데, 모두 죽림칠현(竹林七賢)에 속하는 인물들로서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다. 혜강이 종회(鍾會)의 무함에 걸려 죽자 그의 아들 혜소(嵆紹)를 산도가 추천하여 비서승(祕書丞)으로 삼게까지 하였다. <晉書 卷43, 49>

거원지비[蘧瑗知非 거원은 춘추 시대 위()나라의 어진 대부(大夫)로 자가 백옥(伯玉)이다. 백옥은 항상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였는바, 그가 나이 50세가 되었을 적에 스스로 지난 세월 49년 동안의 잘못을 알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거백옥은 나이 오십이 되어서 사십구 년 동안의 잘못을 알았다.[蘧伯玉行年五十, 而知四十九年之非.]”라고 하였다.

거월삭말[去月朔末 지난 달 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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