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수車隨, 거수거자擧讎擧子, 거수경복遽數更僕, 거수단수腒䐹腶脩, 거수마룡車水馬龍, 거숙어외居宿於外

거수[車隨]  거수는 후거(後車)를 가리킨다. 후거(後車)는 임금이 출행하였다가 스승으로 삼을 만한 신하를 만나 공경히 예우할 때 사용하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거수[居守]  유수(留守)이다.

거수[遽數 진수(盡數)와 같다.

거수거자[擧讎擧子]  춘추 시대 진()나라의 대부(大夫) 기해(祁奚)가 늙어서 치사(致仕)를 청하니 진후(晉侯)가 후임자(後任者)를 추천하게 하였다. 해호(解狐)를 추천(推薦)하였으니 그는 기해(祁奚)의 원수(怨讐)였다. 진후(晉侯)는 해호(解狐)를 기해(祁奚)의 후임자(後任者)로 앉히려 하였으나 해호(解狐)가 갑자기 죽었다. 진후(晉侯)가 다시 추천하게 하니, 기해(祁奚)는 자기의 아들을 추천하였다. 이 일을 군자(君子)자기의 원수(怨讐)를 천거(薦擧)하였으되 아첨(阿諂)이 아니었고 자기 자식을 세웠으되 사심(私心)이 아니었다. 상서(尙書)치우침이 없고 당을 지음이 없으면 군왕(君王)의 길이 공평무사(公平無私)하다.[無偏無黨 王道蕩蕩]’고 하였으니, 기해(祁奚)를 이름인 듯하다.”라고 논평(論評)하였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3년의 전()에 보인다.

거수경복[遽數更僕]  예기(禮記) 유행(儒行)갑자기 세자면 능히 그 수를 마치지 못하고 다 세자면 남겨 두어 사람을 대신시켜도 마칠 수 없다.[遽數之 不能終其物 悉數之 乃留 更僕未可終也]”라고 하였다.

거수단수[腒䐹腶脩]  의례주소(儀禮注疏) 사상견례(士相見禮) ()에서 거는 꿩고기를 말린 것이고, 수는 물고기를 말린 것이다.[腒乾雉 鱐乾魚]”라고 하였다. 즉 거는 육포인 데 반하여 수는 어포이다. 단수에 대해서는 예기주소(禮記注疏) 61수는 포이다. 생강과 계피를 더한 것을 단수라고 한다.[修脯也 加薑桂曰腶修]”라고 하였고, 사계전서(沙溪全書) 40 의례문해(疑禮問解) 졸곡조(卒哭條)에서는 “‘()’의 말뜻은 시작이니, 시작하면 곧 이루어진다. ‘()’ 또한 포이다. ‘의 말뜻은 다스림이니, 다스린 뒤에야 이루어진다. 얇게 저민 것을 포()라 하고, 불려서 생강과 계피를 안에 넣어 다진 것을 단수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단수는 여자들이 시부모에게 올리는 폐백의 하나라고 하였다.

거수마룡[車水馬龍]  수레가 물이 흐르는 것 같고, 말은 용이 노니는 듯하다. 거마의 왕래가 흐르는 물이나 길게 늘어진 용처럼 끊임없이 많은 것을 형용한다. , 행렬(行列)이 성대(盛大)한 모양(模樣), 거마(車馬)의 왕래가 빈번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 명제(明帝)의 비인 마후(馬后)는 복파장군 마원(馬援)의 딸로서, 명제의 아들인 장제(章帝)가 황제가 되자 황태후가 되었다. 장제는 마후가 낳은 자식은 아니었으나 황태후를 존중했다. 언젠가 장제가 마후의 외삼촌들에게 관직을 주려 하자 몇몇 간사한 신하들이 이에 동의했다. 하지만 마후는 장제에게 전에 친정집 적룡원(濯龍園)의 문을 지나가다 보니 인사를 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수레는 물 흐르는 듯했으며 말은 용이 노니는 듯했습니다. 외삼촌들은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였고 하인들도 내 마부에 비길 수 없이 화려한 옷차림이었습니다.[前過濯龍門上, 見外家問起居者, 車如流水, 馬如遊龍. 倉頭衣綠, 領袖正白, 顧視御者, 不及遠矣.] 당시 나는 화를 참고 아무런 책망도 하지 않았지만, 그 후로 다시는 그들에게 아무런 지원도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사치함을 깨우쳐 주지는 못할망정 어찌 관작을 내리려고 하십니까?”라 말하고는 끝내 이를 반대하였다. <後漢書 卷10上 皇后紀 明德馬皇后紀>

거수자[居首者 으뜸을 차지한 사람으로 곧 장원(壯元)한 사람이다.

거수지사[居守之事 임금이 출정(出征)이나 외교(外交)로 나라를 비웠을 때에 임금을 대신해 나라를 지키는 일이다.

거수지천 희형우색[擧手指天 喜形于色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기뻐하는 기색이 얼굴에 완연함을 이른다. 通鑑節要(通鑑節要) 30 진기(晉紀) 안황제(安皇帝)유유(劉裕)가 대현산(大峴山)을 지났는데도 연()나라 군대가 나오지 않자, 유유(劉裕)가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기뻐하는 기색이 얼굴에 완연하였다.[裕過大峴, 燕兵不出, 裕擧手指天, 喜形于色.]”라고 한 데서 보인다.

거숙어외[居宿於外]  예기(禮記) 내칙(內則)나이 10세가 되면 바깥 스승을 모시고 밖에서 자며 글씨와 셈을 배운다.[十年 出就外傅 居宿於外 學書計]”라고 하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