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유虔劉, 건유巾帷, 건유乾維, 건유褰帷, 건유당음褰帷棠陰, 건유지화褰帷之化, 건율태乾栗駄

건유[虔劉 살인(殺人).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13년 조에 우리나라의 농사지은 곡물을 베어버리고 우리 변방의 백성들을 살육하였다.[芟夷我農功 虔劉我邊]”라고 하였다. 방언(方言)죽이고 도적질함을 건유(虔劉)라 한다. (), (), (), ()의 사이에서 죽이는 것은 유()라 하고 도적질을 건()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건유[巾帷]  왕후가 사용하던 수건과 휘장이다.

건유[乾維]  건유(乾維)는 하늘의 벼리. 하늘을 유지하여 받들고 있는 큰 벼리라는 뜻으로, 군주의 권위, 조정의 기강 등을 상징한다.

건유[乾維 건방(乾方). 우리나라의 의주(義州) 분야이다.

건유[褰帷 백성을 직접 대면하고 보살피려는 방백(方伯)의 성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후한(後漢)의 가종(賈琮)이 기주자사(冀州刺史)가 되어 부임할 때, 수레에 올라 휘장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보고 자사는 마땅히 멀리 보고 널리 들으면서 미악을 규찰해야 하거늘, 어찌 휘장을 드리워서 스스로 가릴 수가 있겠는가.[刺史當遠視廣聽, 糾察美惡, 何有反垂帷裳以自掩塞乎.]”라고 하고, 휘장을 걷어 올리게[褰帷] 하였다. <後漢書 卷31 賈琮列傳> 여기에서 유래하여, 건유는 방백의 부임을 가리키게 되었다.

건유[褰帷]  휘장을 걷음. 건유(褰帷)는 지방 장관으로 부임하면서 민생(民生)을 살피는 것을 뜻한다. 후한(後漢)의 가종(賈琮)이 기주자사(冀州刺史)로 부임하면서, 백성의 생활을 두루 보고 듣기 위하여 그동안의 관례를 무시한 채 수레의 휘장을 걷어 올리게 하면서 지방 장관은 멀리 보고 널리 들어서 좋고 나쁜 점을 살펴야 하는데, 어찌 도리어 수레의 휘장을 드리워 스스로 귀와 눈을 가리겠는가.[刺史當遠視廣聽, 糾察美惡, 何有反垂帷裳, 以自掩塞乎,]”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61 賈琮列傳>

건유당음[褰帷棠陰 은혜로운 정사를 펴는 지방장관을 뜻한다. 후한(後漢)의 가종(賈琮)이 기주 자사(冀州刺史)로 부임할 때 백성을 친밀히 대하기 위하여 수레의 휘장을 걷어버리도록[褰帷] 지시한 고사가 있으며, <後漢書 賈琮傳> () 나라 소공(召公)이 감당나무 그늘[棠陰] 아래에서 은혜로운 정사를 행했던 고사가 있다. <史記 燕召公世家>

건유위부로[褰帷慰父老]  수레의 휘장을 걷고 부임(赴任)하는 지방의 노인들과 만나 풍속이나 인심을 널리 아는 것이다. 옛날 자사(刺史)들은 부임길에 모두 수레에 휘장을 드리워 외부 사람들과 만나지 않았는데, 후한(後漢)의 가종(賈琮)은 기주자사(冀州刺史)가 되어 기주에 이르자 자사는 마땅히 시청을 넓혀야 하는데 어찌 도리어 휘장은 드리우는가.”라 하고는 어자(御者)에게 명하여 걷어치우도록 하였다.

건유지화[褰帷之化]  한 나라 가종(賈琮)이 기주자사(冀州刺史)가 되어 갔는데, 전일에 자사를 영접하는 수레에 붉은 장막을 드리웠었다. 가종은 그것을 걷으며 자사는 널리 듣고 보아 민정(民情)을 알아야 하는데, 어찌 장막으로 가리울 것인가.”라고 하였다.

건율태[乾栗駄]  범어(梵語) hrdaya의 음역(音譯)인 건율타야(乾栗陀耶)의 다른 말로, 중생이 본래 가지고 있는 여래장(如來藏)의 마음, 즉 불성(佛性)을 뜻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