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화苣火, 거화蘧化, 거활巨猾, 거황지상고지하居肓之上膏之下, 거후상견사去後常見思

거화[苣火]  갈대를 묶은 횃불이다. 후세에는 거화(炬火)로 썼다. 설원(說苑) 수문(修文)만일 많은 사람이 죽어 시체가 쌓인 집이 있어서 사정이 급하면 사람들을 모으고 동자(童子)에게 북을 치게 하며 갈대 횃불을 들고서 그 집안으로 들어가 여귀(厲鬼)를 몰아낸다. 각기 북을 치며 갈대 횃불을 들고서 집안에 들어와 여귀를 몰아내거든 그 집의 주인은 관()을 쓰고 동쪽 계단에 서 있는다. 여귀를 몰아내는 일이 끝나면 주인은 마을 문을 따라 나오고, 읍문(邑門: 城門성문)을 따라 나와 야외(野外)까지 와서 전송하니, 이것이 있는 힘을 다하여 여역을 구제하는 방법이다. 군대가 전쟁에 패배했을 때에도 이와 같이 한다.[其有重尸多死者急, 則有聚衆童子, 擊鼓苣火, 入官宮裏用之. 各擊鼓苣火, 逐官宮裏. 家之主人, ,立於阼. 事畢, 出乎里門, 出乎邑門, 至野外. 此匍匐救厲之道也. 師大敗亦然.]”라고 한 데서 보인다.

거화[蘧化]  거백옥의 변화. 춘추 시대 위()나라 대부 거백옥(蘧伯玉)이 늙어서도 허물을 고치고 덕()에 나아가는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장주(莊周)가 거백옥을 일러 나이 60세가 되어 60세에 변화하였다.[行年六十而六十化]”고 하였다.

거활[巨猾]  대단히 교활함. 또는 그 사람을 이른다.

거황지상고지하[居肓之上膏之下]  난치의 고질병을 말한다. ()은 격막(膈膜)이고, 심장(心腸) 아래를 고()라 한다. 고황(膏肓). 춘추 시대 진후(晉侯)가 병이 들었을 때 진()나라에서 완()이라는 명의(名醫)를 불러 진후를 치료하게 했는데, 그 명의가 도착하기 전에 두 아이가 진후의 꿈에 나타나서 말하기를 저 완이라는 사람은 명의이니, 우리를 괴롭힐 것이 두렵다. 어디로 도망을 가야 할까?[, 良醫也. 懼傷我, 焉逃之?]”라고 하자, 또 한 아이가 말하기를 흉부 횡격막의 위와 심장의 아래로 가 있으면 우리를 어찌하겠느냐.[居肓之上膏之下, 若我何?]”라고 했다. 이윽고 명의가 도착하여 진후를 보고는 말하기를 이 병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병의 근원이 흉부 횡격막의 위와 심장의 아래에 있어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疾不可爲也. 在肓之上膏之下, 攻之不可.]”라고 하였다. <春秋左傳 成公10>

거후상견사[去後常見思]  떠난 뒤의 사모함. 지방관의 선정에 감화된 지방민들이 지방관이 떠난 뒤에까지 잊지 않고 늘 사모하는 것을 말한다. ()나라 때 하무(何武)가 일찍이 양주자사(揚州刺史) 등을 역임하면서 선정을 많이 베풀었던바, 한서(漢書) 86 하무전(何武傳)그가 있는 곳에 혁혁한 명성은 없었지만, 그가 떠나간 뒤에는 항상 백성들의 사모함을 받았다.[其所居亦無赫赫名 去後常見思]”라고 하였다. 하무(何武)는 한()나라 촉군(蜀郡) 사람으로, 자는 군공(君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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