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안망위居安忘危, 거안사위居安思危, 거안여위居安慮危, 거안자심居安資深, 거안제미擧案齊眉, 거안확삭據鞍矍鑠

거안망위[居安忘危]  편안한 곳에 거하여 위태로움을 잊음을 이른다.

거안사위[居安思危]  평안(平安)할 때에도 위험(危險)과 곤란(困難)이 닥칠 것을 생각하며 잊지 말고 미리 대비(對備)해야 함. 편안히 거처할 때에 위태로운 상황을 미리 생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11년조에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편안히 거처할 때에 위태로운 상황을 미리 생각해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미리 생각하면 대비를 하게 되고, 대비를 하면 환란을 당하지 않게 된다.[書曰 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라고 한 데서 보인다. 유비무환(有備無患).

거안여위[居安慮危]  거안사위(居安思危)와 같은 말로, 편안할 적에 위태로움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11년 조에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편안함에 거하여 위태로움을 생각하라.’고 하였으니, 생각을 하면 대비가 있고, 대비가 있으면 환란(患難)이 일어나지 않는다.[書曰 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라고 보이는데, 두예(杜預)의 주()이것은 일서(逸書)이다.’라고 하였다.

거안자심[居安資深]  거처가 평안하고 자뢰(資賴)함이 깊음. 학문의 깊은 뜻을 궁구하여 스스로 터득함을 말한다.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군자가 깊이 나아가기를 도로써 함은 자득하고자 해서이니, 자득하면 거처함에 편안하고 거처함에 편안하면 힘입는 것이 깊고 힘입는 것이 깊으면 좌우에서 취하여 씀에 그 근원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득하고자 하는 것이다.[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則居之安, 居之安則資之深, 資之深則取之左右, 逢其原. 故君子欲其自得之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거안제미[擧案齊眉]  밥상을 눈썹 높이까지 들어 올려 남편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아내가 예법을 지키며 남편을 깍듯이 공경함을 이르는 말이다. 후한(後漢) 때의 은사(隱士) 양홍(梁鴻)의 아내 맹광(孟光)은 몹시 박색이었으나, 나이 서른에 양홍에게 시집가서 양홍의 뜻을 따라 함께 은거하였으며, 가시나무 비녀를 꽂고 삼베 치마를 입었으며 남편을 감히 마주 보지 못하고 밥상을 눈썹 높이까지 맞추어 들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후한서(後漢書) 83 일민열전(逸民列傳) 양홍(梁鴻)에 의하면 아내가 매양 식사를 준비하되, 양홍의 앞에서는 감히 얼굴을 쳐들어 보지 않았고, 밥상을 눈썹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妻爲具食, 不敢於鴻前仰視, 擧案齊眉.]”라고 하였다. 후에 이를 거안제미(擧案齊眉)라 하여 어진 아내가 부도(婦道)와 예를 극진히 하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梁鴻>

거안확삭[據鞍矍鑠]  후한(後漢)의 명장(名將)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62세의 노령(老齡)으로 군대를 거느리고 출정(出征)하고자 하니, 광무제(光武帝)가 그의 연로함을 염려하여 윤허하지 않았다. 이에 마원은 신은 아직도 갑옷을 입고 말에 오를 수 있습니다.”라 하고는 말안장에 훌쩍 뛰어올라 좌우를 둘러보면서[據鞍顧眄] 쓸 만하다는 것을 보이자, 광무제(光武帝)가 웃으며 강건하고 씩씩하도다, 이 늙은이여![矍鑠哉 是翁也]”라 찬탄하고는, 마침내 마원을 보냈다는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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