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적지이巨跡之異, 거전車戰, 거전踞轉, 거접居接, 거접록居接錄

거적지이[巨跡之異]  옛날 제곡(帝嚳)의 원비인 강원(姜原)이 들에 나갔다가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마음이 동하였는데 잉태하여 후직(后稷)을 낳았다고 한다. 후직은 주()나라의 시조이다. <史記 卷3 殷本紀>

거전[車戰]  ()나라 마융(馬隆)이 선비(鮮卑) 수기능(樹機能)을 참살(斬殺)하고 양주(涼州)를 평정할 적에 편상거(偏箱車)라는 수레를 이용하여 대승을 거둔 고사가 전하고, ()나라 방관(房琯)이 안녹산(安祿山)의 장수 안수충(安守忠)과 진도사(陳濤斜)에서 싸울 적에 거전(車戰)의 작전을 썼다가 대패한 고사가 전한다.

거전[踞轉]  횡목(橫木)에 걸터앉아 거문고를 타다.[踞轉而鼓琴] <左傳> 강희자전(康熙字典)()은 사람이나 물건이 떨어지지 않도록 수레 위의 사방에 덧댄 횡목(橫木)이다.”라고 하였고, 부손(傅遜)()은 종거(從車)하였으니 의장(衣裝)과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이것은 틀림없이 진()의 오자(誤字)이다.”고 하였으며, 양주(楊注)에는 ()은 진()이니, ()은 거후(車後)의 횡목(橫木)이다.”라고 하였다.

거접[居接 과거시험에 대비하여, 글방이나 절간 등 조용한 곳에 함께 모여 공부하는 것이다.

거접록[居接錄 선비들이 함께 거처하면서 학업을 익히는 것을 거접이라고 하였다. <退溪集 卷42 伊山書院記, 韓國文集叢刊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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