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루駏䮫, 거류居留, 거류櫸柳, 거류주걸擧留奏乞, 거류하巨流河, 거륜사각車輪四角
❍ 거루[駏䮫] 고구려 태무왕(太武王) 3년(20)에 왕이 골구천(骨句川)에서 사냥을 하다가 신마(神馬)를 얻어 거루(駏䮫)라고 이름을 붙였다. 5년에 왕이 부여(扶餘)를 공격하여 그 왕을 잡아서 참수하였다. 또한 여러 겹으로 포위되었다가 사잇길을 통해서 밤에 빠져나왔는데, 이때에 골구천에서 얻었던 신마를 잃었다. 3월에 신마 거루가 부여의 말 100필을 데리고 함께 학반령(鶴盤嶺) 아래의 차형곡(車迥谷)에 이르렀다.
❍ 거류[居留] ‘유(留) 땅에 머문다’는 지방의 수령을 맡고 있다는 뜻이다. 장량(張良)이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을 도와 한(漢)나라를 건국하는 데 가장 큰 공로가 있었으나 스스로 작은 땅인 유(留)를 달라고 자청하여 유후(留侯)에 봉해졌다. <漢書 卷40 張良傳>
❍ 거류[去留] 떠나거나 남음. 버리거나 취함. 떠남과 머묾. 일이 되고 안 됨. 죽음과 삶.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 등을 뜻한다.
❍ 거류[櫸柳] 중국굴피나무를 가리킨다. 풍양(楓楊)이라고도 한다.
❍ 거류주걸[擧留奏乞] 거류(擧留)는 보거유임(保擧留任)의 준말로 그 관리에 대해 유임하도록 보증을 서는 것이다. 주걸(奏乞)은 주청(奏請)과 같은 말이다. 즉 그 관리에 대해 신원보증을 서고서 유임시켜 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 거류하[巨流河] 거류하참(巨流河站)을 가리킨다. 요령성(遼寧省) 신민시(新民市) 거류하촌(巨流河村)에 있다.
❍ 거류하[巨流河] 과거의 요하(遼河)이다. 요하의 동쪽을 요동(遼東)이라 하고 서쪽을 요서(遼西)라 하니, 거류하 동쪽이 바로 요동이고 그 서쪽이 요서인 셈이다. 백두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심양의 남쪽으로 흘러 혼하(渾河)와 태자하(太子河)와 합류하여 바다로 들어간다. 거류하와 혼하와 태자하가 합쳐진 곳이라 삼차하(三岔河) 또는 삼차관(三岔關)이라 불렀다고 한다.
❍ 거류하[巨流河] 요하(遼河)의 별칭이다. 중국 동북 지방을 흘러 발해(渤海)로 흘러든다. 이 강을 경계로 요동(遼東)과 요서(遼西)가 나뉘는데, 조선의 사신이 연경(燕京)을 갈 때에 항상 이 강을 건너갔다. 계산기정(薊山紀程)에 “주류하(周流河)는 고가자(孤家子) 13리 지점에 있는데 거류하라고도 한다. 수원은 북지(北地)에서 나오고 장성(長城)으로 들어가서 남쪽으로 흘러 태자하(太子河), 혼하(渾河)와 모여 바다로 들어간다. 세 하수가 서로 합류하기 때문에 혹 삼차하(三叉河)라고도 하고 또 삼분관(三坌關)이라고도 하니, 곧 옛날의 요수(遼水)이다.”라고 하였다.
❍ 거륜사각[車輪四角] 당대(唐代)의 시인 육귀몽(陸龜蒙)의 고의(古意) 시에 “낭군의 마음은 한없이 냉정한데, 첩의 뜻은 한사코 의탁하고파라. 원컨대 낭군의 두 수레바퀴에, 하룻밤 새에 네모가 생겼으면.[君心莫淡薄 妾意正棲託 願得雙車輪 一夜生四角]”이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수레바퀴에 네모가 생긴다는 것은 곧 수레바퀴가 네모져서 마음대로 달릴 수 없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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