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묵莒墨, 거묵난강莒墨難降, 거문불납拒門不納, 거미渠弭, 거민무이취이록去民畝而就吏祿
❍ 거묵[莒墨] 거(莒)와 즉묵(卽墨)으로, 나라를 회복시키는 근거지가 된 곳을 가리킨다. 제(齊) 나라 민왕(湣王) 때 연(燕) 나라 군사에게 패해 모든 성이 함락되고 거와 즉묵 두 성만이 남아 있었는데, 전단(田單)이 이 두 성을 근거로 하여 제 나라 70여 성을 모두 회복하였다. <史記 卷82 田單列傳>
❍ 거묵[居默] 묵계의 본래 지명은 거묵역(居默驛)이었는데, 1500년(연산군6)에 김계행(金係行)이 내려와 만휴정(晩休亭)을 짓고 살면서 정자 앞 시내를 보고 마을 이름을 묵계라고 고쳤다.
❍ 거묵난강[莒墨難降] 전국 시대 제(齊) 나라의 거(莒)와 즉묵(卽墨) 두 고을을 합칭한 말이다. 연(燕) 나라 악의(樂毅)가 제 나라를 쳤을 때 거와 즉묵 두 고을만 항복을 못 받았다는 고사가 있다.
❍ 거문[渠門] 두 개를 나란히 세워 군대의 문(門)으로 삼는 깃발이다.
❍ 거문불납[拒門不納] 거절(拒絶)하여 문안에 들이지 않음.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물리치어 문 안으로 들이지 아니함을 말한다.
❍ 거미[渠弭] 거미(渠弭)는 작은 바다이니 일종의 만(灣)과 같은 것을 이른다.
❍ 거민묘취이록[去民畝就吏祿] 한유(韓愈)의 송우감서(送牛堪序)에 나오는 구절로 “유사(有司)를 통해 급제한 자들은 밭두둑의 평민 신세를 면하고 녹봉 받는 관리가 되는데, 이를 말미암아 진출하여 경상에까지 오른 자가 늘 있었으니, 그 소득이란 것이 크다고 하겠다.[登第於有司者 去民畝而就吏祿 由是進而累爲卿相者 常常有之 其爲獲也 亦大矣]”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韓愈集 卷19 書 送牛堪序>
❍ 거민무이취이록[去民畝而就吏祿] 민무(民畝)는 백성이 경작하는 농지(農地)이니, 곧 농지를 떠나 관리가 되어 녹봉(祿俸)을 받아 생활하게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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