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록鉅鹿, 거록성鉅鹿城, 거록지전鉅鹿之戰, 거록파진巨鹿破秦
❍ 거록[鉅鹿] 거록은 거교(鉅橋)와 녹대(鹿臺)로, 상(商)나라 마지막 임금 주(紂)가 애첩 달기(妲己)와 놀던 곳의 이름이기도 하고, 진한(秦漢) 당시의 현(縣)으로, 항우(項羽)가 진(秦)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던 곳이다.
❍ 거록[鉅鹿] 거록은 전국 시대 조(趙)나라의 성 이름이다. 일찍이 한 문제(漢文帝)가 흉노족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던 중에 낭중서장(郞中署長) 풍당(馮唐)에게 말하기를 “이전에 누가 말하기를 ‘옛날 조나라의 어진 장수인 이제(李齊)가 거록에서 잘 싸웠다.’고 하기에, 지금도 내가 밥 먹을 때마다 그 당시의 거록을 못 잊는다.”라고 하면서 이제와 같은 장수를 구하기를 원하였다. <史記 卷102 馮唐列傳>
❍ 거록[鋸鹿] 거록은 중국의 옛 지명으로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평향현(平鄕縣)에 해당하는 곳이다. 항우(項羽)가 진(秦)나라의 대군을 격파했던 거록지전(鉅鹿之戰)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항우가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넌 뒤에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를 깨뜨리고 여사(廬舍)를 불태운 뒤 사흘치의 식량만 가지고 사졸들에게 필사의 의지를 보여주었던 침주파부(沈舟破釜)의 고사도 여기에서 나왔다.
❍ 거록[鉅鹿] 전국 시대 초(楚)나라 회왕(懷王)이 송의를 상장군(上將軍)으로 삼고 항우(項羽)를 차장(次將)으로 삼아, 진(秦)나라의 공격을 받고 있는 조(趙)나라 거록을 구원하게 하였다. 출정을 한 뒤에 송의가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고 제(齊)나라와 뒷거래를 하며 술잔치를 열고 놀자 항우가 이에 불만을 품고 송의를 죽이고 스스로 상장군이 되어 승리를 거두었다. <史記 卷7 項羽本紀>
❍ 거록[鉅鹿] 후한 영제(靈帝) 때 장각(張角)이 황노(黃老)의 학설을 받들어 한 왕실이 어지러운 틈을 타 난을 일으켰다. 그 무리들이 모두 누런 두건을 썼으므로 황건적이라 불렀는데, 거록(鉅鹿)에서 유비(劉備)·관우(關羽)·장비(張飛)가 도원결의(桃園結義)하고 의병을 일으켜 이들을 소탕하였다.
❍ 거록성[鉅鹿城] 하북성(河北省) 평향현(平鄕縣)에 있는 성으로, 일찍이 항우(項羽)가 이곳에서 진(秦)나라 장감(章邯)의 군사를 격파한 일이 있다.
❍ 거록지전[鉅鹿之戰] 거록(鉅鹿)은 하북성(河北省) 평향현(平鄕縣)에 있는 성으로, 항우(項羽)가 이곳에서 진(秦)나라 장감(章邯)의 군사를 격파하여 왕리(王離)를 사로잡고, 그의 숙부 항량(項粱)이 삼천수(三川守) 이유(李由)를 목 베어 죽였다.
❍ 거록파진[巨鹿破秦] 항우가 거록에서 진나라 군대를 대파한 이야기이다. 거록은 항우(項羽)가 진(秦)나라 군대를 격파한 곳으로 지금 하북성(河北省) 평향현(平鄕縣)에 있다. 사기(史記)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에 “거록을 구원하려는 제후의 군대들이 병력을 풀지 못하다가 초(楚)나라가 진(秦)나라를 치자 여러 장수들이 모두 구경하였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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