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로佉盧, 거로가去魯歌, 거로이번육去魯以膰肉, 거로정去魯情
❍ 거로[去路] 떠나는 길.
❍ 거로[佉盧] 인명으로 거루(佉樓)라고도 하는데 옛날의 글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 글이 좌행(左行: 글씨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씀)인데 지금은 실전(失傳)되었다. <法苑珠林>
❍ 거로가[去魯歌] 공자(孔子)가 노(魯) 나라를 떠날 때 지은 가사이다. 사이가(師已歌) 또는 사을가(師乙歌)라고도 한다.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노환자(魯桓子)가 제(齊) 나라 여악(女樂)을 받아들여 3일 동안 정무를 돌보지 않고, 번육(膰肉) 또한 대부(大夫)에 이르지 않자 공자가 노 나라를 떠났다. 태사(太師) 기(己)가 공자(孔子)를 전송하면서 ‘선생님께서는 아무런 일도 없었는데 어찌하여 떠나십니까?’라고 묻자, 공자(孔子)는 대답 대신 노래를 부르기를 ‘저 여인(舞姬)의 입이여! 사람을 쫓아낼 수 있구나. 저 여인의 청탁함이여!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구나. 내 유유자적하며 세월을 보내리라.[彼婦之口 可以出走 彼婦之謁 可以死敗 蓋優哉游哉 維以卒世]’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 거로다손해조보지모[拒盧多遜害趙普之謀] 송사(宋史) 왕우전(王祐傳)에 “처음에 왕우가 제고(制誥)를 맡았는데 이때 마침 노다손(盧多遜)이 학사(學士)가 되어 몰래 조보(趙普)를 해치려고 하면서 여러 차례 왕우에게 자신과 함께하자고 넌지시 설득하였으나 왕우가 따르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노다손은 회주(懷州) 하내(河內) 사람으로, 후주(後周) 현덕(顯德) 연간의 진사(進士)이다. 송나라 초엽에 지제고(知制誥)에 발탁되었고 중서사인(中書舍人),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역임하였다. 태종(太宗) 때 중서시랑(中書侍郞), 평장사(平章事)에 제수되었다. 진왕(秦王) 조정미(趙廷美)의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애주(崖州)로 유배된 뒤에 배소(配所)에서 죽었다.
❍ 거로이번육[去魯以膰肉] 맹자(孟子) 고자하(告子下) “공자는 노나라의 사구(司寇)가 되었으나 중용되지 않고, 제사에 참여했으나 제사 고기 또한 보내지 않으니, 이에 매우 바삐 노나라를 떠났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제사 고기를 보내지 않아 떠난 것이지만 실지로는 노나라가 예(禮)를 잃었기 때문에 떠난 것이다.
❍ 거로정[去魯情] 공자(孔子)가 그의 본국인 노국(魯國)을 버리고 타국으로 갈 적에 “나의 더딘 걸음이여.[遲遲吾行也]”라 하였으니, 그것은 부모의 나라를 떠나는 마음이다. 맹자(孟子) 만장 하(萬章下)에 “공자께서 제(齊)나라를 떠날 적에는 담궈 둔 쌀을 꺼내 가지고 급히 출발하셨던 반면에, 노(魯)나라를 떠날 적에는 ‘더디고 더디도다, 내 걸음이여.[遲遲吾行也]’라고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부모의 나라를 떠나는 도리이다.[孔子之去齊 接淅而行 去魯 曰遲遲吾行也 去父母國之道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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