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반腒盤, 거방전채擧放錢債, 거방점주居傍點籌, 거배요명월擧杯邀明月, 거백옥蘧伯玉
❍ 거반[腒盤] 말린 꿩고기를 담은 그릇을 가리킨다. 손자며느리가 정식으로 시댁에 들어와 집안 어른께 폐백을 드린 것을 의미한다.
❍ 거반외내 순이훈지[車班外內 順以訓之] 거(車)는 우레이고, 반(班)은 두루 함이다. 외내(外內)를 두루 한다는 것은 둔괘(屯卦)의 내괘(內卦)에 진(震)이 있고 예괘(豫卦)의 외괘(外卦)에 또한 진(震)이 있는 것이다. 곤괘는 순함이니, 예괘의 내괘는 곤(坤)이고 둔괘의 2효(爻)에서 4효(爻)까지가 또한 곤(坤)이다.
❍ 거방전채[擧放錢債] 조선(朝鮮) 때, 벼슬아치가 그의 관내(管內) 주민(住民)에게 이자(利子)를 받고 돈을 꿔주던 일을 이른다.
❍ 거방점주[居傍點籌] 당(唐)나라 중종(中宗)은 황후인 위씨(韋氏)가 무삼사(武三思)를 궁중에 끌어들여 쌍륙(雙陸)을 두면 자신은 옆에 있으면서 그들을 위하여 산대(주판)를 잡아 숫자를 계산해 주었다. 점주랑(點籌郞).
❍ 거배요명월[擧杯邀明月] 이백(李白)의 월하독작(月下獨酌) 시에 “꽃 사이에서 한 병의 술을 가지고, 친구 하나 없이 홀로 술을 마시면서, 술잔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니, 그림자와 합쳐서 세 사람이 되었네.[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라고 하였다.
❍ 거백[擧伯] 초나라의 대부이다.
❍ 거백옥[蘧伯玉] 백옥은 춘추(春秋) 시대 위(衛) 나라 영공(靈公) 때의 현대부(賢大夫) 거원(蘧瑗)의 자(字)이다. 그는 출처를 의에 맞게 하였으므로 공자는 그를 칭찬하여 “군자이다 거백옥이여,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거두어[卷] 감춘다.[君子哉 蘧伯玉 邦有道則仕 邦無道則可卷而懷之]”라고 하였다. <論語 衛靈公> 공자가 위 나라에 갔을 때 그의 집에 머물렀다. 그는 나이 50이 되어 지금껏 49년 동안을 잘못 살았음을 비로소 깨달았다고 하였다. <淮南子 原道訓> 장자(莊子) 칙양(則陽)에 “거백옥은 나이 60이 되도록 60번 변화하였나니[行年六十而六十化] 처음에는 옳게 여기던 것도 끝에 가서 그르다고 판단이 서면 바로 고쳤다.”라는 말이 실려 있다. 도가에서는 무위이치(無爲而治)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시호는 성자(成子)이다. 원나라 때 내황후(內黃侯)에 봉해졌다.
❍ 거백옥[蘧伯玉] 성은 거(蘧), 이름은 원(瑗), 백옥(伯玉)은 자(字). 위(衛)나라의 현인(賢人). 위 헌공(衛獻公)이 동생 자선(子鮮)을 시켜 영희(寗喜)에게 말하기를 “내가 나라에 돌아가기만 하면 그대에게 정치를 맡기고 나는 제사만 주관하겠다.”라고 하였는데, 영희가 이를 거백옥에게 알리자, 거백옥이 말하기를 “나는 예전에 임금이 나라를 떠나는 것도 들으려 하지 않았는데, 감히 다시 들어오는 일을 듣겠는가.”라 하고, 국경 근방의 관문을 통해 나라를 떠나 빠져 나갔다. <春秋左傳 襄公 26年>
❍ 거백옥화[蘧伯玉化] 거백옥(蘧伯玉)은 춘추 시대 위(衛)나라의 대부 거원(蘧瑗)을 말한다. 백옥은 자이다. 전하는 말로 나이 50살에 49년 동안의 잘못을 알았다고 한다. 오(吳)나라의 계찰(季札)이 위나라 찬허(贊許)를 지나가면서 군자(君子)라 여겼고, 공자(孔子)가 그의 행실을 칭찬하여 위나라에 이르렀을 때 그의 집에 머물렀다. 장자(莊子) 칙양(則陽)에 “거백옥은 나이 60이 되도록 60번 변화하였나니[行年六十而六十化] 처음에는 옳게 여기던 것도 끝에 가서 그르다고 판단이 서면 바로 고쳤다.”라는 말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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