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장羹墻, 갱장鏗鏘, 갱장강한羹墻江漢, 갱장견모羹墻見貌

갱장[羹墻]  갱장(羹墻)은 국과 담장이라는 말로, 돌아가신 분을 앙모(仰慕)하는 것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63 이고열전(李固列傳)옛날 요 임금이 돌아가신 뒤에 순 임금은 3년을 앙모하였으니, 앉으면 담벼락에서 요 임금의 모습을 뵙는 듯하였고, 식사를 하면 국그릇 속에서 요 임금을 뵙는 듯하였다.[昔堯殂之後, 舜仰慕三年, 坐則見堯於牆, 食則覩堯於羹.]”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갱장[羹墻]  경모(敬慕)하고 추념(追念)함을 일상적으로 실천함을 이르는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63 이고열전(李固列傳)옛날 요 임금이 돌아가신 뒤에 순 임금은 3년을 앙모하였으니, 앉으면 담벼락에서 요 임금의 모습을 뵙는 듯하였고, 식사를 하면 국그릇 속에서 요 임금을 뵙는 듯하였다.[昔堯殂之後 舜仰慕三年 坐則見堯於牆 食則覩堯於羹]”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성현(聖賢) 또는 선대(先代)를 추모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갱장[鏗鏘]  소리가 종(()의 소리처럼 크고도 맑음이다. 쇠나 옥석 또는 악기 등이 내는 맑은 소리를 가리킨다. 쟁그랑거리는. 낭랑한. 듣기 좋은. 의성어.

갱장[羹墻 역대(歷代)의 성덕대업(盛德大業)을 말한다. 조선 시대 정조(正祖)가 각신(閣臣) 이복원(李福源) 등에게 명하여 열조갱장록(列朝羹墻錄), 어정갱장록(御定羹墻錄) 84책을 편찬(編纂)하였는데, 책 머리에 창업(創業)의 사적을, 중간(中間)에 성덕·가모(嘉謨예악(禮樂정형(政刑수제(修齊치평(治平)의 연혁(沿革)과 제작(製作) 수술(修述)의 본말을, 끝 부분(部分)에 성인공화(聖人功化)의 극치(極致)를 적어 지나간 19대의 성사(盛事)를 열기했다.

갱장강한[羹墻江漢]  갱장(羹墻)은 돌아간 분을 우러러 사모하는 것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93 이고열전(李固列傳)옛날 요() 임금이 붕어한 후로 순() 임금이 3년 동안 요 임금을 사모한 나머지, 앉았으면 요 임금이 담장[]에서 보이고, 밥 먹을 때면 요 임금이 국[]에서 보였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고, 강한(江漢)의 생각이란 바로 돌아간 스승을 추모하여 찬미(讚美)하는 말로, 옛날 공자(孔子)가 돌아간 후, 공자의 제자인 유약(有若)이 공자와 비슷하다 하여 여러 제자들이 그를 공자 섬기듯이 섬기려고 하자,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옳지 않다. 강한으로 깨끗이 씻고 가을볕에 단단히 쪼이는 것과 같아 선생께서는 너무나도 결백하여 더할 수 없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上>

갱장견모[羹墻見貌]  늘 사모하는 것을 말한다. () 임금이 죽은 뒤에 순() 임금이 담장을 대해도 요 임금의 모습이 보이고 국을 대해도 요 임금이 보였다는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六十三 李杜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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