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무수황금전開花無數黃金錢, 개화십장開花十丈, 개화참開花讖
❍ 개화무수황금전[開花無數黃金錢] 두보(杜甫)의 시 추우탄(秋雨歎)에 “가을비에 온갖 풀들이 다 시들어 죽었는데, 뜰아래 결명초는 빛깔이 새뜻하구나. 가지 가득 붙은 잎새는 푸른 깃 일산 같고, 무수히 핀 꽃들은 황금 돈과 흡사한데, 서늘한 바람 쌀쌀히도 너에게 급히 부니, 늦은 철에 네 홀로 섰기 어려울까 두렵구나. 당상의 서생은 부질없는 백발의 몰골로, 바람 앞에서 향내 거듭 맡으며 눈물짓노라.[雨中百草秋爛死 階下決明顔色新 著葉滿枝翠羽蓋 開花無數黃金錢 涼風蕭蕭吹汝急 恐汝後時難獨立 堂上書生空白頭 臨風三嗅馨香泣]”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3>
❍ 개화사상[開化思想] 낡은 사상(思想)과 풍속(風俗)들을 허물어 버리고 새로운 문화(文化)를 일으키고자 하는 사상(思想)을 이른다.
❍ 개화십장[開花十丈] 꽃의 직경이 열 길이나 되는 큰 연꽃을 말하는데, 진인(眞人)들이 노닐 적에는 각각 그 연꽃 위에 앉아 노닌다고 한다. 한유(韓愈)의 고의(古意) 시에 “태화봉 꼭대기의 옥정에 자란 연은, 꽃이 피면 열 길이요 뿌리는 배만 한데, 차갑긴 눈서리 같고 달기는 꿀 같아서, 한 조각 입에 넣으면 고질병이 낫는다네.[太華峯頭玉井蓮 開花十丈藕如船 冷比雪霜甘比蜜 一片入口沈痾痊]”라고 하였다. <韓昌黎集 卷3>
❍ 개화참[開花讖] 도교 팔선(八仙) 중의 한 사람인 한상(韓湘)은 한유(韓愈)의 질손(姪孫)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젊었을 때 신선술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한유가 학문에 힘쓰라고 권유하자, 한상이 웃으면서 언지(言志)라는 시를 지어 “준순주를 만들 줄도 알거니와, 경각화도 피울 수가 있습니다.[解造逡巡酒 能開頃刻花]”라는 시구를 보여 주었다. 한유가 이르기를 “네가 어떻게 조물주의 능력을 빼앗아서 꽃을 피울 수 있단 말이냐?”라고 하자, 한상이 이에 흙을 긁어모은 다음 동이로 그 흙을 덮어 놓았다가 한참 뒤에 동이를 들어내었더니, 거기에 과연 벽목단(碧牧丹) 두 송이가 피어 있었고, 그 목단 잎에는 “구름은 진령에 비꼈어라 집은 어디에 있나, 눈은 남관에 가득 쌓여 말이 가지를 못하네.[雲橫秦嶺家何在 雪擁藍關馬不前]”라는 시구가 작은 금자(金字)로 쓰여 있었다. 한유가 이때 그 시의 뜻을 깨닫지 못하자, 한상이 말하기를 “오랜 뒤에 이 일을 증험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뒤에 한유가 불골표(佛骨表)를 올렸다가 헌종(憲宗)의 진노를 사서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어 가던 도중, 눈을 맞으며 따라오는 한상을 만났던바, 한상이 말하기를 “옛날 목단 잎에 쓰인 시구의 뜻이 바로 오늘의 일을 예언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한유가 지명(地名)을 물어보니 바로 남관(藍關)이라고 하므로, 한유가 마침내 그 시구의 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太平廣記> 참고로, 한유(韓愈)의 시 도원도(桃源圖)에 “복숭아 심으니 곳곳에 피어 산천 원근이 붉은 노을처럼 피어오르네. 처음에는 고향 그렸지만 세월 오래되니 여기가 집이 되네.[種桃處處惟開花, 川原近遠蒸紅霞. 初來猶自念鄕邑, 歲久此地還成家.]”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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