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모별가蓋牟別駕, 개목楷木, 개목사開目寺, 개묘蓋苗

개모별가[蓋牟別駕] 개모(蓋牟)는 요령성(遼寧省) 개주(蓋州)의 고호이고, 별가(別駕)는 통판(通判) 즉 판관(判官)의 이칭으로, 개모별가(蓋牟別駕)는 곧 고려 말기의 문장가로서 일찍이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급제하여 요동로 개주 판관(遼東路蓋州判官)을 지냈던 최해(崔瀣)를 가리키는데, 그는 본디 성품이 매우 강직하여 세속에 타협하지 않고 사람들의 선악을 기탄없이 지적하곤 했다. 그는 이 때문에 끝내 당시 조정(朝廷)으로부터 소외되어 벼슬길이 순탄하지 못했다고 한다.

개목[楷木] 해목(楷木). 공자묘(孔子廟)에 자공(子貢)이 심었다고 하는 나무. 공목(孔木), 황련목(黃連木)이라고도 불린다. 설문(說文) 목부(木部)()는 해목(楷木)이다. 공자의 묘소를 덮고 있는 나무이다.[, 楷木也. 孔子冢蓋樹之者.]”라고 하였다. 산동통지(山東通志)곡부의 공림(孔林)에는 자공(子貢)이 손수 심어 놓은 해목이 있어, 높이가 4() 5()이고, 둘레가 1()이나 되는데, 말랐어도 썩지 않는다.[曲阜孔林有子貢手植楷, 高四丈五尺, 圍一丈, 枯而不朽.]”라고 하였고, 광군방보(廣群芳譜) 회남초목보(淮南草木譜)해목이 공자의 무덤에 났는데, 그 줄기와 가지가 성기면서 굽지 않으니, 이는 바로 그 바탕이 곧기 때문이다.[楷木生孔子冢上, 其枝幹疏而不屈, 以質其故也.]”라고 하였다.

개목사[開目寺]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888 천등산(天燈山)에 있는 절이다. 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천등사라고 하였고, 조선 초기 안동부사 맹사성(孟思誠)이 중수하면서 개목사로 고쳤다고 한다. 1969년에 원통전(圓通殿)을 중수하였는데, 이 때 발견된 상량문에 천순원년(天順元年)’이라는 건축 연도로 이 건물이 1457(세조3)에 중건된 것이 확인되었다. 영가지(永嘉誌)에서는 고을 서쪽 30리 떨어진 천등산에 있다. 흥국사(興國寺)라고도 한다. 일반에 전하기를 고을에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는데, 이 절을 짓고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삼은 후에는 눈병이 없어졌다고 하여 개목사(開目寺)라고 하였다.’라고 전한다. 또한 관음불상(觀音佛像)을 모시는데 불경에 관음보살(觀音菩薩)의 천 개의 눈이 인간을 제도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원통전(圓通殿)은 보물 제242호이다.

개묘[蓋苗] ()나라 인종(仁宗문종(文宗순제(順帝) 때 문신이다. 대명(大名) 원성(元城) 사람으로 자는 운부(耘夫),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벼슬은 제령로 단주 판관(濟寧路單州判官), 섬서행대시어사(陝西行臺侍御史섬서행어사대중숭(陝西行御史臺中丞) 등을 지냈는데, 선정이 많았다. <元史 卷185 蓋苗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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