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주범요芥舟泛坳, 개주생기슬介胄生蟣蝨, 개주지사介胄之士, 개주진문開幬進蚊

개주범요[芥舟泛坳]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마루 위 움푹 팬 곳[坳堂]에 한 잔의 물을 부어 놓으면, 작은 티끌이야 배처럼 둥둥 뜨겠지만 잔을 놓으면 바닥에 붙어 버릴 것이니, 이는 물이 얕고 배가 크기 때문이다.[覆杯水於坳堂之上, 則芥爲之舟, 置杯焉則膠, 水淺而舟大也.]”라고 하였다.

개주생기슬[介胄生蟣蝨] 갑옷 속에까지 이가 꼬인다는 뜻으로, 전쟁이 오래 끎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사기(史記) 주보언전(主父偃傳)강대국은 전쟁에 힘쓰고, 약소국은 방비에 여념이 없게 되어서 나라 간에 합종(合縱)과 연횡(連橫)이 출현하여 사자들의 수레가 분주히 오가게 되었으며 군사들의 갑옷과 투구에는 서캐와 이가 가득하건만, 백성들은 그 고통을 호소할 곳이 없었다.[於是彊國務攻, 弱國備守, 合從連橫, 馳車擊轂, 介胄生蟣蝨, 民無所告愬.]”라고 한 데서 보인다. 참고로, 위료자(尉繚子) 무의(武議)군대를 일으킬 적에 곧바로 병사들로 하여금 갑옷과 투구에서 이와 서캐가 생겨나도 오로지 나를 위하여 쓰임이 되게 해야 하니, 맹금(猛禽)이 참새를 쫓을 적에 참새가 사람의 품으로 들어오고 사람의 방으로 들어오는 것은, 살 곳을 벗어나고자 해서가 아니요, 뒤에 두려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起兵, 直使甲冑生蟣蝨, 必爲吾所效用也. 鷙鳥逐雀, 有襲人之懷, 入人之室者, 非出生也, 後有憚也.]”라고 하였다.

개주성[開州城] 요동 지방 봉황성(鳳凰城) 근처에 있는 성 이름이다. 고구려 보장왕 4년에 당나라가 고구려의 개모성(蓋牟城)을 함락시키고 그 땅을 개주(蓋州)로 삼았다. 개모성은 현재의 중국 요령성(遼寧省) 심양시(瀋陽市)에 있던 성이다.

개주지사[介胄之士] 갑주지사(甲冑之士).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무사(武士)를 이른다. 위료자(尉繚子) 무의(武議)옛날에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무사(武士)가 군주에게 절하지 않은 것은, 자신 때문에 무사를 번거롭게 하지 않음을 사람들에게 보인 것이다. 남을 번거롭게 하고서 그가 목숨을 바치고 그가 힘을 다하기를 바라는 것은,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듣지 못하였다.[故古者甲冑之士不拜, 示人無已煩也. 夫煩人而欲乞其死, 竭其力, 自古至今, 未嘗聞矣.]”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성호사설(星湖僿說) 23권 경사문(經史門) 개자불배(介者不拜)병사란 죽으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전송할 때 천자(天子)로서도 그들을 위해 꿇어앉아 수레를 밀어 보냈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병사들의 충성심을 감동시킬 수 없는데, 어찌 병사들에게 꿇어앉아 절하도록 할 수 있겠는가? 후세 사람은 이런 깊은 뜻은 깨닫지 못하고 갑옷과 투구를 갖춘 병사로서는 불편하기 때문에 절하지 않는다는 것으로만 해설하였으니, 소견이 얕다 하겠다.[兵死地也 其送之也 天子爲之跪而推轂 不如此 無以感動其忠節也 豈可以跪拜曲謹責之 後人不達 乃以甲冑在身爲解者 淺矣]”라고 하였다. 갑주지사불배(甲冑之士不拜).

개주지역[蓋州之役] 인조 18(1640)에 이완(李浣)이 청() 나라의 요청에 의해 부득이 명() 나라를 공격한다는 목적으로 장군 임경업(林慶業)과 함께 전함(戰艦)을 거느리고 대릉하(大凌河석성도(石城島등주(登州) 등지를 거쳐서 개주(蓋州)에 이르러 명군(明軍)과 대전(對戰)했던 일을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 싸움에서 이쪽에서 신호(信號)를 보내어 명군이 그를 알아차리고 미리 도피해 버림으로써, 명군과 아군 사이에는 살상자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개주진문[開幬進蚊]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후집 권49 ‘휘장을 걷어 모기에게 물려주다.[開幬進蚊]’조에 보인다. 본디 남조(南朝) ()나라 원제(元帝)의 금루자(金樓子) 입언 상(立言上)제 환공(齊桓公)이 침상에 누워 관중(管仲)에게 말하기를, ‘나는 나라가 부유하고 백성이 많으니, 더는 걱정이 없다. 그러나 한 생명이라도 살 자리를 잃으면 근심스러운데, 지금 모기가 앵앵거리는 것을 보니 배불리 먹지 못해 굶주린 것이다.’라고 하고는 휘장을 걷어 모기가 물 수 있게 하였다.”라고 한 데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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