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지위귀改之爲貴, 개지척경開地斥境, 개지추介之推, 개진開津, 개질유희介疾有喜

개지위귀[改之爲貴]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법으로 바르게 해 주는 말은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 완곡하게 해 주는 말은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실마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기뻐하기만 하고 실마리를 찾지 않으며 따르기만 하고 잘못을 고치지 않는다면 나는 그를 어찌할 수가 없을 뿐이다.[法語之言 能無從乎 改之爲貴 巽與之言 能無說乎 繹之爲貴 說而不繹 從而不改 吾末如之何也已矣]”라고 하였다. <論語 子罕>

개지척경[開地斥境] 국경을 개척함을 이른다.

개지추[介之推] 중국 춘추(春秋) 시대 진()나라 사람이다. ()는 성()이고 지()는 어조사이며 추()는 이름이다. 통상 개지추(介之推)라 부르고, 개자추(介子推)라고도 부른다. 진 문공(晉文公)이 공자(公子)의 신분으로 망명(亡命)할 당시 19년을 함께하며 온갖 충성을 다하여 수종(隨從)하였다. 진 문공이 환국하여 임금이 된 뒤에 개지추는 녹위(祿位)를 구하는 말을 하지 않았고, 진 문공(晉文公)도 녹(祿)을 반사(頒賜)할 때 개추(介推)에게 미치지 않았다. 개지추는 어머니를 업고 면산(緜山)으로 들어갔다. 뒤에 문공은 개지추를 찾아 면산까지 갔으나 나오지 않으므로 산에 불을 질러 나오게 하려 했으나, 개지추는 끝까지 나오지 않고 나무를 안고 불에 타 죽었다. <史記 卷39 晉世家> <春秋左氏傳 僖公24>

개지추[介之推]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僖公) 24년 기사에 진후(晉侯)가 망명 시절 수행했던 사람들에게 상()을 줄 때, 개지추는 녹위(祿位)를 구하지 않았고 녹(祿) 또한 그에게 미치지 않았다. 개지추가 말하기를 헌공(獻公)의 아들 아홉 사람 중에 유일하게 주군(主君)만이 살아 계신다. 혜공(惠公)과 회공(懷公)은 친근한 사람이 없어서 국내와 국외에서 그들을 버렸는데도 하늘이 진나라를 멸절시키지 않은 것은 반드시 나라에 주재자(主宰者)가 있게 하려 한 것이니 진나라의 제사를 주재할 사람이 주군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 실로 하늘이 주군을 임금으로 세운 것인데 몇몇 사람은 자신들의 공로로 여기니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도 오히려 도둑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공로를 탐하여 자신들의 공로로 삼는 것은 어떻겠는가. 아랫사람은 그 죄를 의()로 여기고 윗사람은 그 간악한 행위에 상을 내려 상하(上下)가 서로 속이니, 저들과 함께하기 어렵다.’하고 하였다. 드디어 은거하다가 죽었다. 진후는 개지추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면상(綿上)을 그의 봉전(封田)으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 장유(壯遊)개자추는 주군의 상을 피해 도망쳤고, 어부는 창랑에서 노를 저었다. 영화는 공적을 세워 누리지만, 세모의 서리는 매섭기만 하다.[之推避賞從, 漁父濯滄浪. 榮華敵勳業, 歲暮有嚴霜.]”라고 하였다.

개진[開津] 고령(高靈)에 있는 지명이다.

개질유희[介疾有喜] ()를 큰 질병으로 여기면 기쁜 일이 있다. 태괘(兌卦) 구사(九四)기뻐함을 헤아려 편안치 못하니, 지조를 지켜 사악(邪惡)을 미워하면 기쁜 일이 있다.[商兌未寧 介疾 有喜]”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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