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芥醬, 개장복의改葬服議, 개장시改葬緦, 개재아이皆在我耳, 개재어서皆在於書
❍ 개장[芥醬] 겨자 장.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따뜻한 물에 겨자가루를 넣으면 개장(芥醬)이 된다고 적혀있다. 겨자에는 마개(馬芥)·자개(紫芥)·백개(白芥)·황개(黃芥) 등이 있는데, 맛이 맵다. 개장어회(芥醬魚膾).
❍ 개장[開獎] 이끌고 격려하다. 혹은 당첨자를 발표하다.
❍ 개장[槪狀] 중요 내용을 개략적으로 보고한 문서로, 대개장(大槪狀)이라고도 한다.
❍ 개장복의[改葬服議] 한유(韓愈)의 글로 오백가주창려문집(五百家注昌黎文集) 권14에 수록되어 있다. 개장(改葬)할 때에 입는 복제(服制)에 대해서 논한 것이다. 개장(改葬)은 산이 무너지거나 물이 솟아 부득이 다른 산지를 골라 다시 안장하는 것을 이른다.
❍ 개장시[改葬緦] 시(緦)는 오복(五服) 중에 가장 가벼운 시마복(緦痲服)을 이른다. 의례(儀禮) 상복(喪服) 시마조(緦麻條)에 “개장하면 시마복을 입는다.[改葬緦]”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의 주(註)에 “시마복은, 신하가 임금을 위하여 자식이 아비를 위하여, 처가 남편을 위하여 입는다. 반드시 시마복을 입는 것은 직접 시신을 보니 복이 없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석 달 동안 시마복을 입고 나면 복을 벗는다.[服緦者 臣爲君也 子爲父也 妻爲夫也 必服緦者 親見尸柩 不可以無服 緦三月而除之]”라고 하였다.
❍ 개장혜공[改葬惠公]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원년(元年)에 “겨울 10월 경신일에 혜공을 개장(改葬)하였다. 혜공이 훙(薨)하였을 때에 송나라와 전쟁(戰爭) 중이었고, 태자(太子) 환공(桓公)이 어렸기 때문에 장례(葬禮)에 미비(未備)한 점이 있었다. 그러므로 개장(改葬)한 것이다.[冬十月庚申 改葬惠公. 惠公之薨也 有宋師 太子少 葬故有闕 是以改葬]”라고 하였다.
❍ 개재강보[皆在襁褓] 강보는 어린 아이를 업을 때 쓰는 포대기로, 모두 아직 어려서 강보에 싸여 있음을 이른다. 통감절요(通鑑節要) 권27 진기(晉紀) 현종성황제(顯宗成皇帝)에 “황제가 편찮으니 황제의 두 아들이 모두 강보에 싸여 있었다. 유빙(庾冰)이 황제를 설득하기를 ‘나라 안에 강한 적이 있으니, 나이가 많은 군주를 세워야 한다.’고 하여 동모제(同母弟)인 낭야왕(琅邪王) 사마악(司馬岳)을 후사로 삼을 것을 청하였는데, 황제가 이를 허락하였다.[帝不豫, 帝二子, 皆在襁褓, 庾冰說帝以國有彊敵, 宜立長君, 請以同母弟琅邪王岳爲嗣, 帝許之.]”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개재아이[皆在我耳] 모두 나에게 달려 있을 뿐임. 격몽요결(擊蒙要訣) 입지장(立志章)에 “뜻을 확립하고 아는 것을 분명히 하고 행실을 독실하게 하는 것은 모두 나에게 달려 있을 뿐이니, 어찌 다른 데서 구하겠는가?[志之立, 知之明, 行之篤, 皆在我耳, 豈可他求哉.]”라고 한 데서 보인다. 앞의 세 가지 일, 곧 뜻을 확립하고, 앎을 분명히 하며, 행실을 돈독히 하는 일은 모두 나에게 달려 있다는 뜻으로 도덕의 실천 여부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을 뿐임을 강조한 내용이다.
❍ 개재어서[皆在於書] 모두 책에 있음. 於는 위치를 나타내는 어조사이다. 격몽요결(擊蒙要訣) 입지장(立志章)에 “도에 들어감은 이치를 궁구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고, 이치를 궁구함은 책을 읽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으니, 성현들께서 마음을 쓴 자취와 선과 악 중에서 본받고 경계해야 할 것이 모두 책에 쓰여 있기 때문이다.[入道莫先於窮理, 窮理莫先乎讀書. 以聖賢用心之迹, 及善惡之可效可戒者皆在於書故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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