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자介子, 개자기액皆刺其額, 개자불배병거불식介者不拜兵車不式, 개자수미芥子須彌

개자[介子] 서자(庶子), 장자(長子)를 제외한 나머지 아들들을 말한다. 서자라고 하지 않고 개자라고 하는 것은, 서자는 비천한 자에 대해서 부르는 칭호이고, 개자는 부이(副貳)의 뜻인바, 역시 귀한 이를 귀하게 여기는 도리에서 이렇게 칭하는 것이다. 차자(次子). 기일(忌日)에 종자(宗子)가 연고가 있어 그 아우가 제사를 섭행(攝行)할 경우, 축문(祝文)종자가 연고가 있어 개자 아무개를 시켜 대신 고합니다.[宗子有故 使介子某代告]”라고 한다.

개자[介子] 춘추 시대 진 문공(晉文公)의 신하인 개자추(介子推)이다. 문공(文公)을 따라 19년 동안 망명하며 온갖 고난을 겪고 귀국했다. 당시의 신하들 가운데 유독 개자추만 봉록(封祿)을 받지 못하자 그것이 부끄러워 면산(緜山)에 숨어들었다. 뒤늦게 문공이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개자추를 불렀으나 나오지 않았다. 이에 그를 면산에서 나오게 하려고 불을 질렀으나, 끝내 나오지 않고 타 죽었다. 이후로 개자추가 타 죽은 날을 한식(寒食)이라고 하며, 그를 애도하여 불을 피우지 않았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개자추가 35일에 불에 타서 죽으니, 온 나라 사람들이 그를 애도하여 매년 3월이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않았다. 이를 금연(禁煙)이라고 하였는데, 어길 경우에는 우박이 내려 전답의 작물을 상하였다.[介子推三月五日為火所焚, 國人哀之, 每歲春暮為不舉火, 謂之禁煙, 犯之則雨雹傷田.]”라고 하였다.

개자기액[皆刺其額] 송대(宋代)에는 정식 병사(兵士)들의 이마에 자자(刺字)하여 병사(兵士)임을 증명하였다. 소식(蘇軾)의 책별(策別) 안만민(安萬民 一: 돈교화敦敎化)지난번 하서(河西)에서 전쟁할 적에 민가의 자제들을 모두 장부에 올려서 군인을 만들었는데, 처음에 관청에서 이들에게 말하기를 임시방편으로 하는 것일 뿐, 너희들을 장기간 부역시키려는 것이 아니니, 이 일이 끝나면 마땅히 너희의 직업을 회복해주겠다.’라고 하였는데, 조금 있다가 모두 이마에 자자(刺字)하여 한 사람도 면한 자가 없었습니다.[往者河西用兵, 而家人子弟皆籍以爲軍. 其始也, 官告以權時之宜, 非久役者, 事已當復爾業. 少焉皆刺其額, 無一人得免.]”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개자불배 병거불식[介者不拜 兵車不式] 중국 춘추 시대 제()나라의 병법가 사마양저(司馬穰苴)의 병법서인 사마법(司馬法)군중에 있을 적에는 말을 크게 하고 꼿꼿하게 서며, 행렬(行列)에 있을 적에는 달려가서 과감히 결단하며, 갑옷을 입은 자는 절하지 않고, 병거(兵車)에서는 경례하지 않으며, () 위에서는 달려가지 않고, 위태로운 일을 만나면 웃어서 이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在軍抗而立, 在行逐而果, 介者不拜, 兵車不式, 城上不趨, 危事不齒.]”라고 한 데서 보이는데,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갑옷 입은 자가 절하지 않는 것은 절을 할 때 좌배(蓌拜: 절함에 방해됨)가 되기 때문이다.[介者不拜 爲其拜而蓌拜]”라는 내용과 병거(兵車)에서는 식(: 경례)을 하지 않으며, 무거(武車)에는 깃발을 늘어뜨리고 덕거(德車)에는 깃발을 묶어둔다.[兵車不式 武車綏旌 德車結旌]”라고 하였다.

개자수미[芥子須彌] 개자씨 속에 수미산(須彌山)을 숨길 수 있다는 뜻이다. 제상(諸相)이 모두 참된 것이 아니니, 지식과 관념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함을 비유한 말이다. 유마경(維摩經) 불가사의품(不可思議品)보살이 이러한 해탈에 머물러서 능히 높고 넓은 수미산을 개자씨 안에 들어가게 하는데, 수미산은 본래 모습과 변함이 없다.[若菩薩住是解脫者, 以須彌之高廣, 內芥子中, 無所增減, 須彌山王本相如故.]”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수미산은 불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세계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다는 산인데, 이 산 주위에는 사대주(四大洲)가 있고, 높이는 84000유순(由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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