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開軒, 개현역철改弦易轍, 개형운부악어開衡雲孚鱷魚

개헌[開軒] 들창(: 들어서 여는 창)을 열다. 두보(杜甫)의 시 하야탄(下夜歎)오월의 밤은 몹시도 짧아라, 들창을 열고 서늘한 기운 맞으니, 밤기운 허명하여 털끝도 보이는데, 날개 달린 벌레 또한 날아오르네.[仲夏苦夜短 開軒納微涼 虛明見纖毫 羽蟲亦飛揚]”라고 하였다. <杜少陵詩集 卷7>

개현역철[改弦易轍] 이전 방식을 철저하게 고치거나, 전대의 죄악을 갚음. 사회적 관습을 바꾸는 일. 장탕(張湯)과 두주(杜周)는 모두 서한(西漢)의 잔혹한 관리였다. 그들은 형벌을 함부로 남용하여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 장탕은 한 사건을 처리하면서 아주 작은 연관이 있는 사람 300여명을 한꺼번에 몰살시켰다. 두주도 자주 한 사건에 수백 명의 사람을 체포하기도 하였다. 이들이 모든 사안에 가혹한 형법을 적용하자 범인 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나자 감옥을 지키는 간수만 10만 명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장탕(張湯)의 아들 장안세(張安世)와 두주(杜周)의 아들 두연년(杜延年)은 오히려 사람됨이 후덕하고 충성스러웠다. 이들은 사안에 따라 법을 적절히 적용하고, 혹형보다는 관용을 통한 교화에 힘썼다. 그러자 죄인이 획기적으로 줄었고, 모든 분야의 직무가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었다. 이후 두 집안의 후손들은 훌륭한 업무능력으로 여러 대에 걸쳐 계속 사직에 중요되었다. 이에 후세의 사람들이 장탕과 두주의 후손들을 악기의 줄을 새로 바꾸고 수레의 길을 새로 만들었다.[改弦易轍]”고 불렀다는 내용이 송대(宋代)의 원보(袁甫)가 지은 응소봉사(應沼封事)에 나온다.

개형운부악어[開衡雲孚鱷魚] 형산(衡山)의 구름을 걷고 악어를 믿게 만듦. ()나라 한유(韓愈)가 형산(衡山)에 놀러갔다가 마침 가을비를 만났는데, 묵묵히 기도하니 하늘이 개였다고 하고, 또 한유가 조주 자사 시절 악어가 근심거리가 되는 것을 보고 제문을 지어 물속에 던져 넣으니 악어가 떠나 악어의 근심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한유(韓愈)가 형산(衡山)에서 지은 알형악묘수숙악사제문루(謁衡嶽廟遂宿嶽寺題門樓)구름 뿜고 안개 내어 산허리를 감추니 비록 절정이 있은들 뉘라서 다 볼 수 있으랴. 내가 온 날이 마침 가을비 내릴 때라, 음기로 어둑하고 맑은 바람 없어라. 마음속으로 묵묵히 기도하매 감응이 있는 듯하니, 어쩌면 정직한 마음이 감통한 게 아닐까. 잠깐 사이에 구름이 말끔히 걷히고 봉우리들이 솟아나, 우러러보니 우뚝이 푸른 허공을 떠받치고 있구나.[噴雲泄霧藏半腹, 雖有絶頂誰能窮? 我來正逢秋雨節, 陰氣晦昧無淸風. 潛心黙禱若有應, 豈非正直能感通? 須臾靜掃衆峯出, 仰見突兀撑靑空.]”라고 하였다. , 당 헌종(唐憲宗) 때 일찍이 이부시랑(吏部侍郞) 이었던 한유(韓愈)가 조주 자사(潮州刺史)로 폄척되어 나갔는데, 그곳 악계(惡溪)에 사는 악어(鰐魚)가 백성들의 가축을 마구 잡아먹어서 백성들이 몹시 고통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이에 한유가 마침내 직접 가서 악어문(鰐魚文)을 지어 악계에 던졌더니, 바로 그날 저녁에 시내에서 폭풍과 천둥벼락이 일어나고, 며칠 후에는 물이 다 말라서 악어들이 마침내 그곳을 떠나 60리 밖으로 옮겨가 더 이상 조주에는 악어의 폐해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古文眞寶 後集 卷3 鰐魚文> <韓昌黎文集 卷3 謁衡嶽廟遂宿嶽寺題門樓>, <韓昌黎文集 卷8 鰐魚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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