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추할고介推割股, 개춘改春, 개춘開春, 개출양開秫釀,

개추할고[介推割股] 개추(介推)는 일명 개지추(介之推) 또는 개자추(介子推)로도 불린다.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 진()나라 사람으로 진 문공(晉文公)이 공자(公子)로서 망명 생활을 할 때 19년 동안 모셨는데, 문공에게 자기의 다리 살을 베어서 먹일 정도로 충성스럽게 섬겼다. 문공이 귀국한 뒤 봉록(封祿)을 주지 않자 어머니와 함께 면산(綿山)에 숨었는데, 문공이 잘못을 뉘우치고 불렀지만 나오지 않았다. 그를 나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질렀는데, 기어이 나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타 죽었다고 한다. 한식(寒食)은 개자추가 타 죽은 날을 추념하기 위해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春秋左氏傳 僖公 24> 참고로, 장자(莊子) 도척(盜跖)세상에서 말하는 현사로는 백이와 숙제가 있는데, 고죽의 임금자리를 사퇴하고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고, 그들의 시체는 아무도 장사를 지내 주지 않았다. 포초라는 사람은 자기의 행동을 꾸미고 세상을 비난하다가 나무를 끌어안고 죽었다. 신도적은 임금을 간하다가 들어주지 않자 돌을 지고 스스로 황하에 몸을 던져 물고기와 자라의 밥이 되었다. 개자추는 지극히 충성을 다해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문공에게 먹였으나, 뒤에 문공이 그를 배반하자, 그는 노하여 진나라를 떠나 살다 나무를 껴안은 채 타죽었다. 미생은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으나 여자가 오지 않자 물이 불어도 떠나지 않고 있다가 다리 기둥을 끌어안은 채 죽어야만 했다. 이 네 사람은 잡기 위해 매달아놓은 개나, 제물로 강물에 던져진 돼지나 표주박을 들고 구걸을 하러 다니는 자나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자기의 명분에 얽매이어 죽음을 가벼이 하고 근본으로 돌아가 수명을 보양하려 하지 않은 자들이다.[世之所謂賢士, 莫若伯夷叔齊. 伯夷叔齊辭孤竹之君而餓死於首陽之山, 骨肉不葬. 鮑焦飾行非世, 抱木而死. 申徒狄諫而不聽, 負石自投於河, 爲魚鼈所食. 介子推至忠也, 自割其股以食文公, 文公後背之, 子推怒而去, 抱木而燔死. 尾生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梁柱而死. 此六子者, 無異於磔犬流豕操瓢而乞者, 皆離名輕死, 不念本養壽命者也.]”라고 하였다.

개춘[改春] 다시 돌아온 봄. 새해. 경춘(經春).

개춘[開春] 초춘(初春). 이른 봄. 초봄. 봄이 시작됨.

개출양[開秫釀] 도연명이 팽택 영(彭澤令)으로 나가서 공전(公田)에 모두 기장을 심도록 한 고사가 있다. <晉書 卷94 陶潛傳> <宋書 卷93 隱逸列傳 陶潛> 도연명(陶淵明)이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 ()에서 팽택령(彭澤令)에 나가게 된 이유를 말하여 당시 시국이 아직 안정되지 못해 마음속으로 멀리 나가 벼슬하는 것을 꺼렸으나 팽택현은 집에서 불과 백 리 떨어져 있고, 봉급으로 받는 밭의 수확물로 족히 술을 담글 수 있겠기에 가겠다고 하였다.[于時風波未靜, 心憚遠役, 彭澤去家百里, 公田之利, 足以爲酒, 故便求之.]”라고 하였다. 소통(蕭統)의 도연명전(陶淵明傳)천성적으로 술을 좋아했지만 살림살이가 가난해 늘 마시지는 못했다. 친구들이 그의 형편을 알아 간혹 술상을 차려놓고 부르면 가서 언제나 흥겹게 마시며 반드시 취하고자 했다. 취해서 물러갈 때에는 언제나 떠나고 머무름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性嗜酒, 而家貧不能恒得. 親舊知其如此, 或置酒招之. 造飲輒盡, 期在必醉. 既醉而退, 曽不恡情去留.]”라고 하였고, “팽택현령(彭澤縣令)이 되어서, 아전들더러 공전(公田)에 모두 찰수수를 심게 하고는 내가 늘 술에 취할 수 있으면 족하다라고 말했다. 처자가 굳이 메벼 심기를 청하자 할 수 없이 250()에 찰수수를 심게 하고 50무에 메벼를 심게 하였다.[爲彭澤令. 公田悉令吏種秫, : ‘吾常得醉於酒足矣.’ 妻子固請種秔, 乃使二頃五十畆種秫, 五十畆種粳.]”라고 하였고, “도연명은 음률을 모르면서도 무현금(無絃琴) 한 대를 갖고 있었는데, 술이 얼근해질 때마다 그것을 타며 자신의 마음을 기탁했다. 귀천을 따지지 않고 그에게 가기만 하면 그때마다 술상을 마련해 함께 마셨는데, 그가 먼저 취하게 되면 손에게 취기가 돌아 자고 싶으니 이제 일어나도록 하시지요라고 말했다. 그의 진솔함이 이와 같았다. 태수가 일찍이 인사차 술을 들고 그를 찾아갔는데, 그 술이 익은 것을 보고 머리에 쓰고 있던 갈포 두건을 벗어서 술을 거르고는 다시 그것을 머리에 썼다.[淵明不解音律, 而蓄無絃琴一張, 每酒適, 輒撫弄以寄其意. 貴賤造之者, 有酒輒設. 淵明若先醉, 便語客: ‘我醉欲眠, 卿可去.’ 其真率如此. 郡將常候之, 值其釀熟,取頭上葛巾漉酒, 漉畢, 還復著之.]”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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