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介福, 개복改卜, 개부開府, 개부介婦

개복[介福]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사대전고(事大典故) 조사(詔使)영조26년 경오, 경연 강관(經筵講官) 예부 좌시랑(禮部左侍郞) 개복(介福) 등이 와서 황태후께 존호를 가상하고 황후를 봉전(封典)하는 조칙을 선포하였다.[庚午, 經筵講官禮部左侍郞介福等來, 宣皇太后加上尊號, 皇后封典詔勅.]”라고 하였다.

개복[改卜] 기존(旣存)의 임금을 폐()하고 유능한 사람을 골라 다시 임금으로 세움을 이른다.

개복[改卜] 다시 첨을 치다. 춘추(春秋) 성공(成公) 7년 봄 왕 정월에 생쥐가 교제(郊祭)에 희생으로 바칠 소의 뿔을 갉아 먹었다. 다른 소를 점쳐 정했는데 생쥐가 또 그 뿔을 갉아 먹었다. 이에 그 소를 그냥 놓아 주었다.[成公七年 春王正月 鼷鼠食郊牛角 改卜牛 鼷鼠又食其角 乃免牛]”라는 기사가 있다.

개복[改服] 옷을 갈아입음이다.

개부[開府] 개부(開府)는 높은 품계의 관원, 이를테면 삼공(三公), 대장군(大將軍), 장군(將軍) 등이 부서(府署)를 만드는 것으로 요속(僚屬)들을 선발해둘 수 있다. 일반 관원들은 이러한 권한이 없다. 후한서(後漢書) 72권 동탁전(董卓傳)이각(李傕)이 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승진하여 개부(開府)한 다음, 사례교위(司隸校尉)를 겸임하고 부절(符節)을 지녔다.”라고 하였다.

개부[開府] 부서(府署)를 개설하여 요속(僚屬)들을 두는 것을 이른다. () 나라 때부터 삼공(三公)의 집에 부()를 개설하게 하였으니, 집에 관부를 여는 것을 개부(開府)라 하였다. 전하여 삼공의 지위를 의미하였다. () 나라 때는 삼공(三公)만이 개부를 하였는데, (() 이후로 많아져서 진()의 양호(羊祜)는 형주 도독(荊州都督)으로서 개부하였다. 그리하여 후세에 도독을 개부라고 칭하게 되었다.

개부[開府] 문장을 잘하는 막부의 책임자를 가리킨다. 북주(北周)의 문장가 유신(庾信)이 표기대장군(驃騎大將軍)과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를 역임하였으므로 세상에서 유개부(庾開府)라고 일컫는다. <北史 卷83>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청신함은 유신(庾信)과 같고, 준일함은 포조(鮑照)와 같네.[淸新庾開府 俊逸鮑參軍]”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개부[開府] 부병(府兵)의 통수권자로 부병(府兵) 24()에 각각 1()을 두었는데, 2천 명 내외를 통솔하였다.

개부[介婦] 적장자(嫡長子)의 처가 아닌 며느리, 즉 중부(衆婦)를 일컫는 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