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파糠簸, 강패江牌, 강퍅剛愎, 강퍅자용剛愎自用, 강편수姜編修, 강평剛平
❍ 강파[糠簸] 진(晉)나라 때 손작(孫綽)이 평소에 남 조롱하기를 좋아했는데, 한번은 습착치(習鑿齒)와 함께 길을 가다가, 손작이 앞에 가면서 습착치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곡식을 일어 모래를 가리면 자갈이 뒤에 처지게 된다.[沙之汰之, 瓦石在後.]”라고 조롱하자, 습착치가 바로 이어 응수하기를 “곡식을 키질하여 까부르면 겨와 쭉정이가 앞으로 나가게 된다.[簸之颺之, 糠粃在前.]”라고 한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五十六 孫綽傳>
❍ 강패[江牌] 도박 기구의 한 가지의 투전(鬪牋)을 가리킨다.
❍ 강퍅[剛愎] 성미가 까다롭고 고집이 셈. 좌전(左傳) 선공(宣公) 12년 조에, 진(晉)나라와 초(楚)나라 전쟁에서 손숙오(孫叔敖)는 계속 후퇴할 것을 주장했으나, 대부(大夫) 오삼(伍參)이 초장왕(楚莊王)을 찾아가 싸우자고 강력히 주장하면서 “진나라의 지휘부(순림보)는 중군의 주장에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그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부장인 선곡은 고집이 세고 인정머리가 없기 때문에 명령에 따르려 하지를 않습니다. ······ 이번에 나가면 진나라 군대를 분명 패퇴시킬 수 있습니다.[伍參言於王曰, 晉之從政者新, 未能行令. 其佐先縠剛愎不仁, 未肯用. ······ 篳此行也, 晉師必敗.]”라고 한 데서 보인다. 초장왕은 손숙오를 시켜 반격을 하게 했다. 진나라 군대는 참패하고 초군은 승리를 거두었다. 또, 한비자(韓非子) 십과(十過)에, 환공(齊桓公)이 관중(管仲)에게 포숙아(鮑叔牙)에게 정치를 맡기면 어떨지를 물으니, 관중이 대답하기를 “안됩니다. 포숙아는 인물이 사납고 고집이 세며 포악합니다. 사나우면 백성을 난폭하게 다룰 것이며, 고집이 세면 인망을 얻지 못할 것이며, 포악하면 백성이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생각이 천박하므로 패자의 보좌에는 부적당합니다.[不可. 鮑叔牙爲人, 剛愎而上悍. 剛則犯民以暴, 愎則不得民心, 悍則下不爲用. 其心不懼, 非霸者之佐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강퍅자용[剛愎自用] 고집불통. 자기의 주장만 고집하면서 제멋대로 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이다. 강퍅(剛愎)은 성미가 까다롭고 고집이 센 것이고, 자용(自用)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만 하는 것을 이른다. 공자가 이르기를 “어리석으면서도 자용하기를 좋아하고, 지위가 낮으면서도 자전하기를 좋아하고, 지금 세상에 나서 옛 도를 행하려 한다면, 이러한 사람은 재앙이 그 몸에 미칠 것이다.[愚而好自用 賤而好自專 生乎今之世 反古之道 如此者 災及其身者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中庸章句 第28章>
❍ 강편수[姜編修] 중국 한림원(翰林院)의 편수 강왈광(姜曰廣)을 말한다. 인조 4년에 황자 탄생의 조서를 반포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왔다.
❍ 강평[剛平] 강평(剛平)은 위(衛)나라 땅으로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청풍현(淸風縣: 淸豊縣) 경내에 있었는데, 조 경후(趙敬侯) 4년에 이곳에 성(城)을 쌓아 읍(邑)을 만들었으며, 경후(敬侯) 5년 제(齊)나라와 위(魏)나라가 조(趙)나라를 침공하여 강평을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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