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장剛腸, 강장彊壯, 강장江瘴, 강장絳帳, 강장康莊
❍ 강장[剛腸] 꿋꿋한 신념. ‘굳센 창자’의 뜻으로, ‘굳세고 굽히지 않는 마음’을 비유(比喩)하는 말이다.
❍ 강장[彊壯] 40세 즈음을 말한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40세에는 강건하여 벼슬을 한다.[四十强而仕]”라고 하였다.
❍ 강장[江瘴] 강에 있는 독기(毒氣), 즉 덥고 습한 공기를 가리킨다. 원진(元稹)의 시 표하(表夏)에 “강의 덥고 습한 기운 예년보다 일러져, 끈적끈적한 더위를 참아내기 어렵네.[江瘴夏炎早 蒸騰信難度]”라고 하였다.
❍ 강장[絳帳] 붉은 빛깔의 휘장으로, 스승의 강석(講席) 또는 학자의 서재(書齋)를 이른다. 후한서(後漢書) 권90 상 마융열전(馬融列傳)에 “마융은 재능이 뛰어나고 박학한 당시의 대학자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수천에 이르렀다. 금 연주를 잘하고 피리 부는 것을 좋아하며 성정이 대범하고 솔직한데다가 유학자의 예절 등에 구애되지 않았다. 거처하는 집과 각종 기구며 복식을 대체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으며, 늘 높은 당(堂) 위에 앉아 붉은 비단 휘장을 드리우고, 앞에는 가르치는 학생들을, 뒤에는 여악사들을 세워두었는데, 학생들은 순서에 따라 그의 학설을 배우기 위해 소수의 사람만이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融才高博洽, 爲世通儒, 敎養諸生, 常有千數. 善鼓琴, 好吹笛, 達生任性, 不拘儒者之節. 居宇器服, 多存侈飾. 常坐高堂, 施絳紗帳, 前授生徒, 後列女樂, 弟子以次相傳, 鮮有入其室者.]”라고 하였다.
❍ 강장[絳帳] 강사장(絳紗帳). 붉은 휘장을 이른다. 후한(後漢) 때 경학자(經學者)인 마융(馬融)은 고재박식(高才博識)한 대유(大儒)로서 문하에 항상 천여 명의 제생(諸生)을 교양(敎養)하였는데, 호사스러움을 좋아하여 자기 거실을 퍽 사치스럽게 꾸몄던바, 언제나 높은 당상에 앉아 진홍색 비단으로 된 휘장을 쳐두고 앞에서는 제생들을 교수하고 뒤에는 여악(女樂)을 배열해 놓았는데, 그 진홍색 휘장[絳帳]을 후세에 강좌(講座)를 미칭하는 뜻으로 전용하였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 마융전(馬融傳)에 “융의 거처(居處) 기복(器服)이 치식(侈飾)이 많아서 항상 고당(高堂)에 앉아 강사장(絳紗帳)을 쳐 놓고[常坐高堂, 施絳紗帳.]서 그 앞쪽으로는 생도를 가르치고, 뒤쪽에서는 여악(女樂)을 벌였다.”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60上 馬融列傳> 전하여, 후세에는 강좌(講座)를 지칭하여 강장(絳帳)이라 하였다. 사문(師門) 또는 강석(講席)의 경칭(敬稱)으로 쓰인다.
❍ 강장[康莊] 사통팔달(四通八達)의 큰길, 대도(大道)의 뜻으로 강구(康衢)라고도 한다. 이아(爾雅) 석궁(釋宮)에 “오달(五達)의 길을 강(康)이라 하고, 육달(六達)의 길을 장(莊)이라 한다.[五達謂之康 六達謂之莊]”라고 하였다. 인간의 바른 도리, 곧 의(義)로 보기도 한다. 맹자가 ‘의는 사람의 길[義人路也]’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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