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미견剛者未見, 강자아姜子牙, 강작뢰江作罍, 강자매장姜子賣漿, 강잠姜潛
❍ 강자미견[剛者未見] 공자가 “나는 굳센 자를 아직 보지 못하였다.[吾未見剛者]”라고 하자, 어떤 이가 “신정(申棖)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가 다시 “신장은 욕심 때문에 그런 것이니, 어찌 굳세다고 할 수 있겠는가.[棖也慾 焉得剛]”라고 평한 말이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에 나온다. <論語 公冶長>
❍ 강자아[姜子牙]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을 이른다. 강(姜)은 성이고, 자아(子牙)는 그의 자다. 주무왕(周武王)을 도와 은(殷)나라를 멸했다. 속칭 강태공(姜太公)이라고도 한다.
❍ 강작뢰[江作罍] 황정견(黃庭堅)의 시 차운자첨무창서산(次韻子瞻武昌西山)에 “원결이 가객들과 함께 마신 잔을 씻고, 무창산에 기대어 장강을 술독으로 여겼는데. 고금을 비치는 소공 문장 모르는 이 없어서, 조정보다는 농부와 어부 자리 다퉈 함께 했네.[洗湔塵痕飮嘉客, 笑倚武昌江作罍. 誰知文章照今古, 野老爭席漁爭隈.]”라고 한 데서 보인다. 소식(蘇軾)의 시 무창서산(武昌西山)에 “불어난 봄 강물이 포도주 익을 때 빛깔 되면, 무창성에 버드나무 심은 사람 아는 이가. 지난날 번구에서 봄날 술을 가득 싣고, 매화 보러 서산에 올랐던 일 생각하네.[春江淥漲蒲萄醅, 武昌官柳知誰栽. 憶從樊口載春酒, 步上西山尋野梅.]”라고 하였는데, 소식(蘇軾)이 춘강록창포도배(春江淥漲蒲萄醅)라고 한 것은 이백(李白)의 시 양양가(襄陽歌)에 “멀리 보이는 한수는 청둥오리 머리 빛깔, 잘 익어 거르기 전 포도주를 닮았구나.[遙看漢水鴨頭綠 恰似葡萄初醱醅]”라고 한 것을 인용하여 강물을 주지(酒池)에 고인 술에 비유하여 읊은 것이다. 뢰(罍)는 술을 담던 술독을 가리킨다.
❍ 강자매장[姜子賣漿]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별집(別集) 권29 매장천량(賣漿天凉) 조에 “강자(姜子)가 젊은 시절 가난하여 음료를 팔려고 하면 마침 날씨가 서늘해지고 소를 잡아 고기를 팔려고 하면 마침 날씨가 더워졌다.[姜子才少貧賣漿 値天凉 屠牛賣肉 値天熱]”라는 내용이 있다. ‘姜子’가 연감유함(淵鑑類函) 권391 등 다른 자료에는 ‘姜子牙’로 되어 있으니, 이는 곧 주 무왕(周武王)을 도와 은(殷)나라를 멸하고 제(齊)나라에 봉해진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 곧 강태공(姜太公)으로, ‘姜’은 그의 성이고 ‘子牙’는 그의 자이다.
❍ 강작아시구[强作哦詩癯] 맹교(孟郊)와 가도(賈島)는 당나라 헌종(憲宗) 때 같은 시대의 시인인데, 당시의 사람들이 그들의 시를 평하기를 “맹교는 차고, 가도는 여위었다.[郊寒島瘦]”라고 하였다.
❍ 강잠[姜潛] 송(宋)나라 연주(兗州) 봉부(奉符) 사람으로 자는 지지(至之)이고 석개(石介)와 동향(同鄕)이다. 춘추(春秋)에 조예가 깊었고, 명주녹사참군(明州錄事參軍), 연주녹사참군(兗州錄事參軍) 등을 거쳐 진류지현(陳留知縣)에 이르렀다. 진류현(陳留縣)의 지주사(知州事)가 되었는데 왕안석(王安石)이 신법(新法)을 시행하자 은거(隱居)하였다.<宋史 卷458> <宋元學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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