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絳人, 강인強仁, 강인곤궁羌人困窮, 강일江一, 강일剛日, 강일용姜日用, 강임姜任

강인[絳人]  강인(絳人)은 강현노인(絳縣老人)을 이른. 옛날에 진()나라의 도공부인(悼公夫人)이 기성(杞城)을 쌓고 있는 인부들에게 밥을 먹였는데, 그 자리에 강현(絳縣) 사람으로서 나이가 아주 많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어 나이를 물어보니 신의 생일은 정월 초하루 갑자일로, 이미 445번째의 갑자일이 지나갔으며, 그 끝 갑자일에서 오늘까지는 3분의 1갑자에 해당됩니다.” 하였는데, 사광(師曠)이 날짜를 따져 보고는 73세라고 하였다. 그러자 강현을 다스리고 있던 조무(趙武)나이 든 분을 부역하게 한 것은 저의 죄입니다.”라고 하면서 사죄하고는 노인에게 벼슬을 제수하자, 그 노인은 늙었다고 사양하고 떠나갔다. <春秋左氏傳 襄公30>

강인[強仁 힘써 인()을 실행한다는 뜻으로, 예기(禮記) 표기(表記)죄를 두려워하는 자는 인을 힘써 실행한다.[畏罪者強仁]”라고 하였다.

강인곤궁[羌人困窮]  서강(西羌) 사람이 한재(旱災)로 인하여 간난(艱難)하고 군박(窘迫)함을 이른다.

강일[江一 강을(江乙), 강윤(江尹)이라고도 표기한다. 본래 위()나라 사람으로 초()나라에 와서 벼슬하고 있었는데, 계모(計謀)에 뛰어났다.

강일[剛日]  일진(日辰)에 천간(天干)이 갑((((()이 든 날을 이른다. 양일(陽日)이므로 길일(吉日)로 인정한다. 옛날에 십간(十干) 중의 기수(奇數)에 해당하는 갑(), (), (), (), () 5일은 양강(陽剛)에 속한다 하여 강일(剛日)이라 하고, 십간 중의 우수(偶數)에 해당하는 을(), (), (), (), () 5일은 음유(陰柔)에 속한다 하여 유일(柔日)이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예기(禮記) 곡례 상(曲禮上)에 의하면 바깥일은 강일을 가려서 하고, 집안일은 유일을 가려서 한다.[外事以剛日, 內事以柔日.]”라고 하였는데, 그 소()“10일 중에 기수일이 다섯, 우수일이 다섯인데 갑····임은 강일이며, ····계는 유일이 된다.[十日 有五奇五偶 甲丙戊庚壬爲剛 乙丁己辛癸爲柔]”라 하였다. 바깥일이란 치병(治兵순수(巡狩) 등 교외(郊外)에서 거행하는 일을 가리키고, 집안일이란 종묘 제사·관혼상제를 뜻한다.

강일용[姜日用 고려(高麗) 예종(睿宗)이 일찍이 사루(絲樓)에 임어하여 모란(牡丹)을 완상하면서 문신 56인을 불러 각촉부시(刻燭賦詩)의 규정에 따라 모란시(牡丹詩)를 짓게 한 결과, 주부(主簿) 안보린(安寶麟)이 제일로 뽑혀 견()을 수상하였고, 그 이하도 모두 차등 있게 수상했다. 이때 역시 시를 잘 짓기로 이름났던 강일용(康日用)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왕이 그의 시 짓는 모습을 서서 보고 있노라니, 그는 촛불이 다 타가는 무렵에야 백발의 취한 늙은이는 궁전 뒤에서 구경하고, 눈 밝은 늙은 유신은 난간 가에 기대 있구나.[頭白醉翁看殿後 眼明儒老倚欄邊]”라는 일련(一聯)만 겨우 지어 이 초고(草藁)를 소매 속에 넣고 어구(御溝)에 엎드려 있었다. 왕이 환관을 명하여 그 시를 가져다 보고는 탄상(嘆賞)하여 마지않으면서 이르기를 옛사람이 이른바 못생긴 여자는 얼굴 가득 화장을 하여도, 서시의 반쯤 단장한 얼굴만 못하다.[臼頭花鈿滿面 不如西施半粧]’라는 말이 이를 두고 말함이구나.”라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강임[姜任]  ()나라 태왕(太王)의 비 태강(太姜)과 문왕(文王)의 어머니 태임(太任)으로, 모두 후비로서의 덕을 지녔던 사람들이다. <詩經 大雅 思齊>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