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후康侯, 강후絳侯, 강후姜后, 강후대죄姜后待罪, 강후출처康矦出處

강후[康侯]  강후는 나라를 잘 다스리는 제후(諸侯)라는 뜻인데, 주역(周易) 진괘(晉卦) 괘사(卦辭)진은 강후에게 말을 많이 하사하고 낮에 세 번씩 접견하는 상이로다.[晉 康侯用錫馬蕃庶 晝日三接]”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곧 대신(大臣)이 임금으로부터 각별한 은총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강후[康侯강후는 북송의 학자 호안국(胡安國)의 자()이며,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소학(小學) 외편(外篇) 선행(善行)왕신민(汪信民)이 일찍이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만 먹고 살 수 있는 훈련이 되어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人常咬得菜根 則百事可做]’라고 하였는데, 강후(康侯) 호안국(胡安國)이 이 말을 듣고 무릎을 치면서 칭찬해 마지않았다.”라는 말이 있다.

강후[絳侯 강후(絳侯)는 한 고조(漢高祖)의 개국 공신인 주발(周勃)의 봉호(封號)이다. 한고조 유방(劉邦)을 따라 의병을 일으켜 그 공로로 강후에 봉해졌다. 유방이 일찍이 말하기를 주발은 중후하고 학문은 없으나 유씨(劉氏)를 안정시킬 사람은 주발이 틀림없다.”고 하였다. 여후(呂后) 때에 여씨(呂氏)들이 권력을 장악하였는데, 여후가 죽고 여녹(呂祿) 등 여씨(呂氏)들이 모반하였을 때 주발이 진평(陳平) 등과 같이 이들을 베어 한실(漢室)을 편안히 하였고, 문제(文帝)를 옹립하였다. 문제(文帝) 때 우승상(右丞相)이 되었다. 주발이 승상에서 물러나 강현(絳縣)에 취임해 있다가 주발이 모반(謀反)하려 한다.”는 어떤 자의 무고(誣告)로 인하여 무고하게 장안으로 체포되어 가서 조사를 받던 중, 어떻게 소명을 해야 할지 몰라서 옥리(獄吏)에게 천금을 주고 방도를 강구한 결과, 옥리가 문서의 뒷면에다 공주로 증거를 대라.[以公主爲證.]”라는 말을 써서 보여주므로, 그의 말대로 공주를 증거로 삼아서 가까스로 용서를 받고 풀려나게 되었다. 공주는 바로 문제의 딸로 주발의 자부가 되었으므로, 그녀를 증거로 삼게 했던 것이다. 강후가 옥에서 풀려나며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백만 군대를 거느렸으나, 어찌 옥리가 귀한 줄을 알았겠는가?”라고 하였다 한다. <史記 卷57 絳侯周勃世家><漢書 卷 40 周勃傳>

강후[姜后]  주 선왕(周宣王)의 부인(夫人)인 강후는 제나라 출신으로 어질고 덕성이 있었는데, 주선왕이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 후부인(后夫人)을 방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하루는 강후가 밖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귀걸이와 비녀를 벗어 머리를 풀고 대죄하면서 첩이 재능이 없어 첩의 음심(淫心)이 드러났습니다. 심지어 군왕으로 하여금 예법을 잃고 늦잠을 자게 하여, 여색에 빠져 덕을 잊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였습니다.……첩을 처벌해 주십시오.”라고 하니, 선왕이 즉시 반성하고 정사에 부지런히 힘썼다고 한다. <列女傳 賢明 周宣姜后傳>

강후대죄[姜后待罪]  주 선왕(周宣王)의 왕후인 강후(姜后)는 덕성이 있었는데, 선왕이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자 강후가 스스로 비녀를 벗어 머리를 풀고 대죄하면서 자신의 잘못으로 임금이 예법을 잃고 늦잠을 자게 하여, 여색에 빠져 덕을 잃게 하였다고 처벌해 주기를 청하자, 선왕이 반성하고 정사에 부지런히 힘썼다고 한다. <列女傳 賢明 周宣姜后傳>

강후출처[康矦出處]  강후(康矦)는 송()나라 때의 학자 호안국(胡安國)으로, 강후는 그의 자이다.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남송(南宋) 철종(哲宗) 때 태학박사(太學博士)로 출발하여 고종(高宗) 때 중서사인(中書舍人)이 되었다. 평생 춘추(春秋) 연구에 전력을 기울여 춘추전(春秋傳)을 지었다. 주진(朱震)이 소명(召命)을 받고 출처(出處)의 마땅함에 대하여 묻자, 호안국이 사람의 거취(去就)와 어묵(語黙)의 기미는 마치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과 같아서 배고프고 배부름과 춥고 따뜻함은 반드시 자신만이 짐작할 수 있어서 남에게 결정 받을 수도 없으며, 또 남이 결정해 줄 수도 없다. 나의 평생 출처는 모두 내 마음으로 결단하였다.[朱震被召, 問出處之宜, 安國曰: 去就語黙之幾, 如人飲食, 其饑飽寒温, 必自斟酌, 不可決諸人, 亦非人所能决也. 吾平生出處, 皆內斷於心.]”라고 하였다. <宋史 卷435 儒林列傳 胡安國><宋名臣言行錄 外集 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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