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회양절형호江淮兩浙荊湖, 강회영康懷英, 강회지투康回之鬪, 강회초목江淮草木, 강획講劃
❍ 강회양절형호[江淮兩浙荊湖] 강회(江淮)는 강소(江蘇) 안휘(安徽) 지역으로 장강(長江)과 회하(淮河) 유역이며, 양절(兩浙)은 절동(浙東)과 절서(浙西)를 가리키며, 형호(荊湖)는 호북(湖北)·호남(湖南) 지역으로 동정호(洞庭湖)의 남북쪽에 있는데 옛날 형주(荊州) 땅이었기 때문에 형호(荊湖)라 이름한 것이다.
❍ 강회영[康懷英] 강회영(康懷英)은 산동(山東) 연주(兗州) 사람으로 본명은 회정(懷貞)인데 후양(後梁) 말제(末帝) 주우정(朱友貞)의 휘를(諱) 피하여 이름을 고쳤다. 강회영의 열전(列傳)은 구오대사(舊五代史) 권23 양서(梁書) 제23 열전13과 신오대사(新五代史) 권22 양신전(梁臣傳) 제10에 실려 있다. 강회영은 후양(後梁) 태조(太祖) 주전충(朱全忠)의 지우(知遇)를 입어 전장에서 승승장구하다가 몇 번의 패배를 거쳐 죽음을 맞았다.
❍ 강회지보장[江淮之保障] 강회(江淮) 지방의 요충지인 수양성(睢陽城)을 가리키는 바, 전략적 요충지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안사(安史)의 난리 때 수양성(睢陽城)이 반란군에 포위되어 성안에 양식이 고갈되자 사람들은 모두 성을 버리고 도주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장순(張巡)과 허원(許遠)은 “수양은 강회(江淮)의 안전한 보호 장치이다. 만약 이 성을 버리고 떠나면 적이 반드시 승세를 타고 깊이 쳐들어올 것이니, 그렇게 되면 강회는 없게 될 것이다.[睢陽江淮保障也 若棄之 賊乘勝鼓而南 江淮必亡]”라 하고, 반란군의 무리가 남하(南下)하여 낙양(洛陽)으로 곧바로 진격할 수 없게 수양성(睢陽城)을 사수(死守)하다 끝내 전사하였다. <新唐書 卷192 張巡許遠傳>
❍ 강회지투[康回之鬪] 강회는 상고 시대 공공(共工)의 이름이다. 그는 힘이 세었는데 전욱(顓頊)과 임금 자리를 다투다가 되지 못하자, 성내어 부주산(不周山)에 부딪치니 하늘의 끈이 끊어지고 땅의 기둥이 꺾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의 지형이 동남쪽으로 기울었다 한다. <淮南子 原道訓>
❍ 강회초목[江淮草木] 구당서(舊唐書) 권152 장만복전(張萬福傳)에 “강회의 초목도 그대의 위명을 알고 있으리라고 짐은 생각한다.[朕以爲江淮草木亦知卿威名]”라는 말이 나온다.
❍ 강획[講畫] 과거나 취재(取才) 때 강서(講書) 시험에서 얻은 성적의 점수를 말한다.
❍ 강획[講劃] 과거(科擧)와 취재(取材) 때 강(講)의 성적을 획으로 표시하는 것으로서, 곧 강서성적(講書成績)의 점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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