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지우江湖之憂, 강호지치羌胡之恥, 강호범주江湖范舟, 강호필안江湖匹鴈

강호지우[江湖之憂]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있으면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것을 이른다. ()나라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옛사람들은 높이 묘당(廟堂)에 있을 때에는 백성을 걱정하였고, 멀리 강호에 있을 때에는 임금을 걱정하였다. 따라서 조정에 나아가서도 걱정이요 물러나서도 걱정이었으니 어느 때에 즐거워할 수가 있었겠는가. 이는 필시 천하의 근심은 누구보다도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모두가 즐거워한 뒤에 즐기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居廟堂之高 則憂其民 處江湖之遠 則憂其君 是進亦憂 退亦憂 然則何時而樂耶 其必曰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라고 말한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古文眞寶後集>

강호지인[江湖之人 세상을 피하여 자연(自然)을 벗삼아 한가로이 지내는 사람. 강호에 있는 사람으로 곧 벼슬하지 않는 사람을 이른다.

강호지치[羌胡之恥]  여기서 강호(羌胡)는 서하(西夏)와 거란(契丹)을 가리킨다. 북송(北宋) 진종(眞宗) 경덕(景德) 원년(元年: 1004)에 거란(契丹)이 침입하여 단연지맹(澶淵之盟)을 맺고 매년 거란에 비단 20만 필과 은() 10만 냥을 보내기로 하였다. 인종(仁宗) 경력(慶歷) 2(1042)에는 서하(西夏)가 침입하자 거란이 그 틈을 타 다시 압박하여 송()은 거란(契丹)에 비단과 은을 10만씩 더 늘려주기로 하고, 서하(西夏)에도 은과 비단을 주기로 하고 강화를 맺었다.

강호범주[江湖范舟]  강호에 띄운 범려의 배[范舟].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겠다는 말이다. 춘추 시대 월()나라 대부 범려(范蠡)가 구천(句踐)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패자(覇者)가 되게 한 뒤에, 홀로 배를 타고 오호(五湖)로 나갔던 고사가 전한다. 대략은 다음과 같다. 춘추 시대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일찍이 오왕(吳王) 부차(夫差)로부터 회계(會稽)의 치욕을 당한 뒤, 구천의 모신(謀臣)인 범려(范蠡)가 미인 서시(西施)를 오왕에게 바쳐 오왕의 마음을 현혹시켜 끝내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러고 나서는 이내 월왕을 하직하고 다시 서시를 데리고 서호(西湖)에 배를 띄워 함께 떠났는데, 그 후 그는 제()나라에 들어가 치이자피(鴟夷子皮)로 성명(姓名)을 바꾸고 도() 땅에 살면서 주공(朱公)이라 칭하고 상업(商業)으로 치산(治産)을 잘하여 거부(巨富)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 고사는 흔히 신하가 공을 이룬 뒤에는 미련 없이 은퇴하는 의미로 쓰인다. <史記 卷41 越王句踐世家>

강호필안[江湖匹鴈]  넓은 강이나 호수에는 물오리와 기러기가 수없이 많으므로, 그중에 한 마리는 전체 숫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라는 뜻이다. ()나라 때에 양웅(揚雄)이 지은 해조(解嘲)벼슬길에 오른 자는 청운에 들어가지만 벼슬길이 떨어진 자는 구렁에 빠진다. 아침에 권력을 잡으면 공경재상(公卿宰相)이 되고 저녁에 권세를 잃으면 필부(匹夫)가 되니, 비유하자면, 강호(江湖)의 언덕과 발해(渤海)의 섬에 기러기 네 마리가 내려앉는다고 해서 숫자가 늘어나지 않고 오리 두 마리가 날아간다고 해서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 것과 같다.[當塗者入靑雲 失路者委溝渠 旦握權則爲卿相 夕失勢則爲匹夫 譬若江湖之雀 勃解之鳥 乘雁集 不爲之多 雙鳧飛 不爲之少]”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해조(解嘲)는 한서(漢書),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예문유취(藝文類聚) 등에 실려 전하는데, 상호 간에 다소 글자의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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