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왕도종江夏王道宗, 강하지이江河之異, 강하황동江夏黃童, 강학强學, 강학가講學家

강하왕의공[江夏王義恭]  유의공(劉義恭)을 가리킨다. 남조 송()나라 종실이며 무제(武帝)의 아들로 강하왕(江夏王)에 봉해졌다. 무제가 죽고 나서 전폐제(前廢帝)인 유자업(劉子業)이 즉위하여 무도한 정치를 행하자 상서령(尙書令) 유원경(柳元景), 상서복야(尙書僕射) 안사백(顔師伯)과 모반을 꾀하였다가 발각되어 살해당하였다.

강하왕도종[江夏王道宗()나라 종실(宗室) 출신의 무장(武將)으로, 태종(太宗)에게 이세적(李世勣)과 견줄 수 있는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태종(太宗) 때에 이정(李靖)을 따라 출정하여 돌궐(突厥)을 격파하는 등 큰 공을 세워 정관(貞觀) 11년에 강하군왕(江夏郡王)에 봉해졌으나, 뇌물수수의 죄명(罪名)으로 하옥되어 직무와 봉읍을 삭탈당하였다가 다시 등용되어 요동도행군부총관(遼東道行軍副總管)으로 태종(太宗)을 따라 고구려 침공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뒤에 삭주(朔州) 지역의 진수(鎭守)를 맡아 아사나사이(阿史那社爾)등과 함께 군대를 이끌고 설연타(薛延陀)를 섬멸하여 북방을 평정하였으나, 고종(高宗) 영휘(永徽) 4년에 장손무기(長孫無忌)의 모함으로 상주(象州)에 유배 도중에 병사하였다. <舊唐書 宗室列傳>

강하지이[江河之異]  ()나라 신정(新亭)에서 명사(名士)들이 모여 난세(亂世)를 개탄하는 우국지정(憂國之情)의 말을 하자, 주의(周顗)가 탄식하며 풍경은 똑같은데 눈을 들어 보니 강산은 모두가 바뀌었구나.[風景不殊 擧目有江河之異]”라고 하니, 참석한 이들 모두가 서로 돌아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晉書 卷69 周顗列傳>

강하황동[江夏黃童]  총명하고 박학하여 재주가 넘치는 사람을 칭송하는 말이다. 후한(後漢) 때 강하(江夏) 안륙(安陸) 사람 황향(黃香)은 자가 문강(文彊)으로 9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를 봉양하였는데, 여름에는 베개와 잠자리에 부채질하여 서늘하게 하고 겨울에는 몸으로 이불을 따뜻하게 하여[선침온금扇枕溫衾] 어릴 적부터 효성으로 이름났다.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읽어 글에 능하였고, 특히 천문(天文), 역법(曆法), 음악(音樂) 등을 좋아하여 박문강기(博聞强記)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천하에 강하의 황향과는 쌍벽이 없구나.[천하무쌍강하황동天下無雙江夏黃童]’라고 칭하였다. 뒤에 장제(章帝)가 황향에게 동관(東觀)에 있으면서 미처 보지 못한 서책을 보게 하자, 천하 사람들이 모두 우러르면서 칭송하였다. <東觀漢記 黃香>

강하황동[江夏黃童 황향(黃香)을 지칭한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80 문원열전(文苑列傳) 황향(黃香)황향은 자가 문강(文強)으로 강하(江夏) 안륙(安陸) 사람이다. 나이 9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그리워하다가 야위어 상중(喪中)에 죽을 뻔하였으므로 향리의 사람들이 그의 효성을 칭찬하였다. 나이 20이 되었을 때 그 고을의 태수(太守) 유호(劉護)가 소문을 듣고 불러다 문하효자(門下孝子)로 삼고 매우 사랑하였다. 황향이 가난하여 노복이 없었으므로 몸소 일을 하여 마음을 다해 부친을 봉양하면서 경전(經典)을 널리 보고 도술(道術)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문장에 능하니, 도성에서 그를 천하에 둘도 없는 강하황동(江夏黃童)’이라고 호칭하였다.[黃香字文強, 江夏安陸人也. 年九歳, 失母, 思慕憔悴, 殆不免喪, 鄕人稱其至孝. 年十二, 大守劉護聞而召之, 署門下孝子, 甚見愛敬. 香家貧, 内無僕妾, 躬執苦勤, 盡心奉養. 遂博學經典, 究精道術, 能文章, 京師號曰: 天下無雙江夏黃童.]”라고 하였다.

강학[强學]  부지런히 배우다. 현장(玄奘)은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파라일사국(婆羅痆斯國)에서 사람들의 성격이 온화하고 공손하며 부지런히 배우는 것을 중히 여기는데 외도를 믿는 이들이 많고 불법을 아는 이들이 드물었다.[人性溫恭, 俗重强學, 多信外道, 少敬佛法]”라고 하였고, 예기(禮記) 유행(儒行)에서 유자의 덕행은 임금과 신하가 모여 문답을 하는 자리에 있는 귀한 보물 같아서 제후들이 예를 갖춰 불러 쓰기를 기다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배우는 것은 다른 사람이 묻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고, 마음에 충성과 신의를 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추천을 기다리는 것이며, 몸으로 직접 실천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기록을 중히 알기 때문이다.[席上之珍以待聘, 夙夜强學以待問, 懷忠信以待擧, 力行以待取]”라고 하였다.

강학[彊學]  강학(强學). 열심히 배우다.

강학가[講學家]  저술보다 강학에 치중하는 학자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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