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차모적降此蟊賊, 강창江漲, 강창희講唱戱, 강책絳幘, 강책계인絳幘鷄人

강차모적[降此蟊賊]  시경(詩經) 대아(大雅) 상유(桑柔)하늘이 상란(喪亂)을 내린지라 우리들이 세운 왕을 멸망시키고, 이 해충들을 내려 농사가 모두 병들었도다. 애통한 중국이 모두 위태로워 다 황폐했으니, 체력이 하늘의 화를 생각할 수도 없도다.[天降喪亂 滅我立王 降此蟊賊 稼穡卒痒 哀恫中國 具贅來荒 靡有旅力 以念穹蒼]”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강창[江漲]  강물이 불어 넘침. 두보(杜甫)의 시 강창(江漲)가벼운 돛배는 쾌히 떠나기에 편리하니, 나의 도를 창주에 붙이리라.[輕帆好去便 吾道付滄洲]”라고 하였다.

강창[江漲]  강창교진(江漲橋鎭)을 가리킨다. 저장(浙江) 항주(杭州) 무림문(武林門) 북쪽에 있다.

강창[講唱 강창이란 운문과 산문을 엇섞은 형태의 연예이다. 강창자는 청중들에게 운문 부분은 가창(歌唱)으로, 산문 부분은 강설(講說)을 통해 일정한 고사를 들려주던 형식이었다. 강창은 당대의 변문에서 그 연원이 시작되었다. 이는 당시 인도로부터 수입된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강창은 각종 민간 연예의 흥성과 궤를 같이하며 송대에 와서 흥성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인기가 많았던 강창은 바로 제궁조이다.

강창희[講唱戱]  송대에 들어와 유행한 민간 기예 중에서 전대의 것을 계승발전시킨 기예로서 대체로 가무희, 강창희, 골계희 세 종류가 있다. 강창희로는 고자사, 제궁조, 복잠, 도진, 애사, 설화 등이 있다. 고자사는 춤이 없어 오직 이야기만을 사곡으로 엮어 노래한다. 제궁조는 송나라 때의 창가이다. 체재는 산문과 운문의 합체로 되어 있으며, 변문의 영향을 받은 설창문학이다.

강책[絳幘]  붉은색 두건. 한 대(漢代)의 숙위(宿衛)들이 쓰던 두건으로 닭의 벼슬[鷄冠]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계창(鷄唱)으로 날이 밝는 것을 전했다. 당 나라 왕유(王維)의 시 화가사인조조대명궁지작(和賈舍人早朝大明宮之作)붉은 관 쓴 계인이 새벽을 알린다.[絳幘鷄人報曉籌]”라고 하였다. 계인(鷄人)은 벼슬 이름으로 새벽이 되면 백관을 깨우는 직임을 맡았다. <周禮 春官宗伯>

강책계인[絳幘鷄人]  강책(絳幘)은 붉은색 두건을 말한다. 본래는 한()나라 때 궁중에서 숙위하던 사람들의 복식(服飾)으로 새벽을 알릴 때 이 두건을 쓰고 닭 울음소리를 냈다. 계인(鷄人)은 관직명으로 새벽이 되었음을 보고하는 일을 한다. 주례(周禮) 춘관종백(春官宗伯)계인(鷄人)이 밤이 지나 새벽이 되었다고 소리쳐 백관에게 큰 소리로 알린다.[鷄人夜嘑旦 以叫百官]”는 기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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