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안석江左安石, 강좌업중江左鄴中, 강좌왕씨江左王氏, 강좌이오江左夷吾

강좌안석[江左安石]  강좌(江左)는 동진(東晉)을 가리킨다. 동진의 재상인 사안(謝安)은 자가 안석(安石)으로 경륜과 지략이 뛰어나 명망이 높았는데, 회계(會稽)의 동산(東山)에 은거하자, 당시 사람들이 안석이 세상에 나오지 않으니, 창생들을 어찌하려는가.[安石不肯出, 將如蒼生何?]”라고 하였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강좌업중[江左鄴中 강좌(江左)는 남북조 시대 동진(東晉)을 가리키는 말로, 이때에는 완적(阮籍), 혜강(嵆康), 산도(山濤) 등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불리던 문인들이 활동하였다. 업중(鄴中)은 조조(曹操)가 도읍한 업()을 가리키는 말로, 이때에는 공융(孔融), 진림(陳琳), 왕찬(王粲), 조조, 조비(曹丕) 등 소위 건안 칠자(建安七子)라고 불리던 문인들이 활동하였다.

강좌왕씨[江左王氏 강좌는 동진(東晉) 시대 이후 강동에 자리 잡았던 남조(南朝)를 말한다. 왕씨는 동진 때 서예가로 유명한 왕희지(王羲之)와 부친 못지않은 명성을 지녔던 아들 왕헌지(王獻之)이다.

강좌이오[江左夷吾]  강동(江東)의 관중(管仲). 위기에 나라를 돕고 백성을 구제할 인재를 이르는 말이다. 강좌(江左)는 장강(長江) 하류의 동쪽 지역으로 오늘날의 강소성(江蘇省) 일대를 말하고, 이오(夷吾)는 춘추시대 때 제 환공(齊桓公)을 도와 패업(霸業)을 이룬 관중(管仲)의 자이다. ()나라가 중국을 빼앗기고 강좌로 옮겨갔을 때에 왕도(王道)가 승상(丞相)으로 있었다. 온교(溫嶠)가 처음 강동에 가서 조정의 기강과 질서가 바로잡히지 못하고 미약한 것을 보고 걱정을 하고 실망하였으나, 왕도(王導)를 만나보고는 강좌에 본시 관이오가 있는데, 내가 또 무엇을 걱정하겠는가?[江左自有管夷吾, 吾復何慮?]”라고 기뻐하며 칭찬한 데서 나온 말이다. <晉書 卷67 溫嶠列傳>

강좌이오[江左夷吾 이오(夷吾)는 춘추 시대 제()나라 환공(桓公)을 도와 패업(霸業)을 이루게 한 관중(管仲)을 가리킨다. 이오(夷吾)는 관중의 자()이다. 강좌이오(江左夷吾)는 관이오(管夷吾)와 같은 강좌(江左)의 명재상으로 칭해졌던 진()나라의 왕도(王導)를 가리킨다. 강좌는 장강(長江) 이동(以東)의 지역이라는 뜻으로, 강동(江東)을 가리킨다. ()나라 원제(元帝)가 처음 장강을 건너 건업(建業)에 도읍을 정한 초창기에, 온교(溫嶠)가 국가의 형세가 쇠퇴한 것을 걱정하던 중에 왕도(王導)와 대화를 나눠 보고는 강좌에 본시 관이오가 있는데 내가 또 무엇을 걱정하겠는가.[江左自有管夷吾 吾復何慮]”라면서 기뻐했던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67 溫嶠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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