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절모춘음康節暮春吟, 강절소康節邵, 강절지려康節之慮, 강절파성康節怕盛,

강절모춘음[康節暮春吟 강절(康節)은 북송(北宋)의 역학가(易學家)인 소옹(邵雍)의 호이고, 그의 시 모춘음(暮春吟)숲 속에서 살면서 언제나 늦잠을 자는데 근래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어이 견디나. 깊어가는 봄 해는 길고 주렴은 땅에 드리워졌으니 정원에는 바람 없는데도 꽃이 저절로 날리네.[林下居常睡起遲, 那堪車馬近來稀? 春深晝永簾垂地, 庭院無風花自飛.]”라고 하였다.

강절소[康節邵]  송나라 때 사상가이다. 이름은 옹(), 자는 요부(堯夫), 강절(康節)은 시호이다. 상수론(象數論)을 제창하였고, ()에 밝았는데, 그 학파를 백원학파(百源學派)라고 하였다. 그는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고 사마광(司馬光)과 여공저(呂公著) 등과 사귀었다. 진종(眞宗: 대중상부大中祥符) 4년에 나서 신종(神宗: 희령熙寧) 10년에 67세로 죽었다. 저서에 관물편(觀物篇어초문대(漁樵問對선천도(先天圖) 등이 있다.

강절조군선[絳節朝羣仙 강절은 한() 나라 때에 사자(使者)가 가지는 적색(赤色)의 부절(符節)을 말한 것이니, 강절을 지닌 군선이란 즉 각국의 사신들을 미화하여 이른 말이다.

강절지려[康節之慮]  강절(康節)의 염려. 소강절(邵康節)이 천거를 받고 가우(嘉祐) 연간에 장작감 주부(將作監主簿) 벼슬을 받았다가 결국 취임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마음에 내키지 않은 벼슬을 받은 것은 벼슬을 받지 않으면 명성이 더욱 높아지고 관작이 더욱 이어질 것을 염려해서라 한다. <朱子大全 卷25>

강절파성[康節怕盛 강절(康節)은 송나라 소옹(邵雍)의 시호이다. 그의 자는 요부(堯夫), 호는 안락와(安樂窩백원(百源)이다. 소옹의 안락와중음(安樂窩中吟) 11수에 술 마시되 만취하게 되지는 말 것이며, 꽃구경하되 만개할 때는 하지를 말아야지. 사람이 이런 일을 능히 알 수 있다면야, 어찌하여 양 미간에 괜한 시름 이르리오.[飮酒莫敎成酩酊, 賞花愼勿至離披. 人能知得此般事, 焉有閑愁到兩眉.]”라고 하였는데, 주희(朱熹)가 이를 인용하면서 소강절은 매사에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문득 머물렀으니, 예를 들면 꽃을 보되 만개한 모습은 절대 보지 말아야지.’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康節凡事只到半中央便止, 如看花切勿看離披是也.]”라고 하였다. <朱子語類 卷100 邵子之書>

강절행성[江浙行省]  ()나라 때에 중서성(中書省)에 예속되어 강절(江浙) 지방을 다스리던 관아. 관원으로 승상(丞相), 평장(平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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