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절絳節, 강절康節, 강절관화康節觀化
❍ 강절[絳節] 사신의 상징으로 사명을 받들고 가는 신하가 외방으로 나갈 적에 가지고 가는 붉은 깃발이다.
❍ 강절[絳節] 사신이 지니고 갔던 신표(信標). 사자(使者)가 소지하는 붉은 색의 부절(符節)이다.
❍ 강절[絳節] 전설속의 상제(上帝)나 신선들이 사용하는 붉은 색의 의장(儀仗)이다.
❍ 강절[康節] 강절은 소옹(邵雍)의 시호이다. 북송(北宋) 인종(仁宗)·신종(神宗) 때 사람으로, 자는 요부(堯夫), 호는 안락선생(安樂先生)·이천옹(伊川翁)이다. 낙양에 은거하여 은퇴한 사마광(司馬光), 부필(富弼) 등과 교유하였고, 여러 차례 징소(徵召)되었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주역(周易)에 조예가 깊었고 상수학(象數學)의 능통하였다. 상수(象數)에 의한 신비적 우주관과 자연 철학을 제창하였다.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소문산(蘇門山) 백천(百泉)에서 독서하며 사는 집을 안락와(安樂窩)라 하고 자호를 안락(安樂) 선생이라 하였다. 또한 낙양(洛陽)에 살 때에는 공중누각(空中樓閣)을 지어 자호를 무명공(無名公)이라 하기도 하였다. 저서에 관물편(觀物篇), 이천격양집(伊川擊壤集),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등이 있다. 그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는 수리(數理)로 천문과 역법을 해설한 저술로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 강절[康節] 송나라 학자인 소옹(邵雍)을 가리킨다. 자는 요부(堯夫)이며, 강절(康節)은 그의 시호이다. 송나라 영종(英宗)·신종(神宗) 때 사람으로 뒤에 하남부(河南府) 숭현(嵩縣)으로 이사하여 살았다. 젊었을 때 재주가 뛰어나 웅지(雄志)를 품고 세상에 큰 공업(功業)을 세우려 하였다. 이지재(李之才)에게 주역(周易)의 상수학(象數學)을 배워 신묘(神妙)하게 알았으며, 황하(黃河)와 분수(汾水)를 건너고 회수(淮水)와 한수(漢水)를 지나 제(齊)·노(魯)·송(宋)·정(鄭)의 옛터를 주류(周流)하였다고 한다. 나중에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소문산(蘇門山) 백천(百泉)에서 독서하며 사는 집을 안락와(安樂窩), 자호를 안락선생(安樂先生)이라고 하였다. 송원학안(宋元學案)에 “소옹의 증조(曾祖)가 군직(軍職)으로 태조(太祖)를 섬겼다.”라고 하였다.
❍ 강절관화[康節觀化] 송(宋)나라 소옹(邵雍)이 임종할 당시 문병하러 찾아온 사마광(司馬光)에게 웃으면서 “내가 자연의 변화를 한번 살펴볼까 하는데 어떻겠는가?[試與觀化一遭]”라고 하였다. <聞見前錄 卷20> 관화(觀化)는 만물의 변화를 관찰한다는 뜻으로, 죽음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장자(莊子) 지락(至樂)에 “사람의 생명은 빌린 것이다. 빌려서 살고 있으니 생명은 먼지나 때와 같은 것이다. 사생은 주야의 교대와 같은 것이다. 게다가 나는 자네와 함께 만물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는데, 마침 변화가 나에게 미쳤으니 내가 또 어찌 싫어할 것인가.[生者假借也. 假之而生, 生者塵垢也. 死生爲晝夜. 且吾與子觀化而化及我, 我又何惡焉?]”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였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