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저羌氐, 강적羌笛, 강적羌篴

강저[羌氐]  강저(羌氐)는 강족(羌族)과 저족(氐族)을 아울러 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동진(東晉) 때에 전진(前秦)과 후량(後涼)을 세웠는데, 이때에 모두 멸망되었다.

강적[羌笛 고대 중국 서북쪽에 거주하던 강족(羌族)이 사용하던 피리이다. 군악(軍樂)에 많이 사용되었다. 강적을 읊는 악부(樂府)에 절양류(折楊柳)가 있는데, 버들가지 꺾으며 이별하는 아쉬운 정을 노래한 것이다. 또 당나라 왕지환(王之渙)의 양주사(凉州詞) 기일(其一)황하는 멀리 백운 사이로 오르고, 한 조각 외로운 성 만 길 산에 있네. 강적으로 어찌 양류가 피지 않음을 원망하랴, 봄빛은 옥문관을 넘지도 못하는데.[黄河遠上白雲間, 一片孤城萬仭山. 羌笛何須怨楊柳, 春光不度玉門關.]”라고 하였다.

강적[羌笛]  고대의 관악기로 길이는 24치이고 구멍은 3, 4, 5개짜리가 있다. 강중(羌中)에서 나온 까닭에 강적(羌笛)이라 불렀다. 호적(胡笛)이라고도 한다. 풍속통(風俗通)에 이르기를 한 무제 때 구중이 적()을 만들었고, 또 그 후에 강적(羌笛)이란 것이 있게 되었다.[漢武帝時 丘仲作笛 其後又有羌笛]”라 하였다.

강적[羌篴]  강적(羌笛). 적곡(笛曲)의 이름. 즉 호가곡(胡笳曲)이다. 원래 오랑캐의 피리라는 말로, 사천성(四川省)의 강족(羌族)에서 전래되었기 때문에 강적이라고 한다. 그 곡조에 낙매화곡(落梅花曲)이 있다. 이백(李白)의 시 여사낭중흠청황학루상취적(與史郞中欽聽黃鶴樓上吹笛)한번 유배객이 되어 장사 땅으로 가니, 서쪽으로 장안 바라봐도 내 집이 안 보이네. 황학루 위에서 옥 젓대를 불어대니, 강성 오월에 낙매화 곡조가 구슬프구나.[一爲遷客去長沙, 西望長安不見家. 黃鶴樓中吹玉笛, 江城五月落梅花.]”라고 하였는데 낙매화곡(落梅花曲)으로 악부(樂府)에 들어있다. , 이백(李白)의 청계반야문적(靑溪半夜聞笛)강족의 피리로 부는 매화곡, 오계의 농두유수가는 맑네. 추운 산 가을 포구 달 아래, 창자가 끊어질 듯한 옥문관에서의 슬픔이여.[羌笛梅花引, 吳溪隴水淸. 寒山秋浦月, 腸斷玉關情.]”라고 하였다. <樂書 羌笛> <李太白文集 卷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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