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골산皆骨山, 개공蓋公, 개공당蓋公堂, 개공청정蓋公淸淨, 개공치황로蓋公治黃老

개골산[皆骨山] 금강산의 별칭이다. 특히 겨울의 금강산을 두고 개골산이라고 한다.

개공[蓋公] 합(蓋公). 개공(蓋公)은 중국 진()과 전한(前漢) 때의 은자이다. 노자(老子)에 밝았으며 악신공(樂臣公)을 스승으로 섬겼다. 개공(蓋公)은 그의 성명(姓名)이 아니고 공()은 그에 대한 존칭으로 이름을 전하지 않는다. ()자는 성()이나 지명(地名)으로 쓸 경우에는 으로 읽는다. 한 효혜제(漢孝惠帝) , 조참(曹參)이 제상(齊相)이 되자 황로학(黃老學)에 뛰어난 개공(蓋公)에게 치도(治道)를 물었는데, 개공은 청정(淸靜)함으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저절로 진정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조참은 개공을 정당(正堂)에 모시고 정사를 자문하며 다스리니 마침내 제나라가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소식(蘇軾)의 개공당기(蓋公堂記)조참(曹參)이 처음 제()나라 정승이 되어서 장로(長老)와 여러 선생(先生)들을 불러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하는 방법을 물었으나, ()나라의 옛 학자들이 백 명으로 헤아려졌는데 사람마다 말이 달라서 조참(曹參)이 결정할 바를 알지 못하였다. 교서(膠西)에 개공(蓋公)이라는 사람이 황로(黃老)의 학설을 잘 안다는 말을 듣고 사람을 시켜서 초청하자, 개공(蓋公)이 말하기를 정치하는 방도는 깨끗하고 고요함을 귀하게 여기니, 이렇게 하면 백성들이 저절로 안정된다.’라고 하고는 유추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에 조참(曹參)이 정당(正堂)을 피하여 개공(蓋公)을 여기에 머물게 하고 그의 말을 따르자, ()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그 뒤에 조참(曹參)이 제()나라를 다스리던 방법으로 천하를 다스리니, 천하(天下)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조참(曹參)을 어진 정승이라고 칭송하고 있다.[始參為齊相, 召長老諸先生, 問所以安集百姓, 而齊故諸儒以百數, 言人人殊, 參未知所定. 聞膠西有蓋公, 善治黃老言, 使人請之. 蓋公為言治道貴清淨而民自定, 推此類具言之, 參於是避正堂而舍蓋公, 用其言而齊大治. 其後以其所以治齊者治天下, 天下至今稱賢焉.]”라고 하였다.

개공당[蓋公堂] 소식(蘇軾)이 밀주태수(密州太守)로 있을 때 세운 당()으, 서한(西漢)의 개국공신 조참(曹參)을 도왔던 제()나라 사람 개공(蓋公)을 기려 당호를 개공당(蓋公堂)이라 하였다. 개공(蓋公)은 한()나라 초기의 학자인데, 교서(膠西) 사람으로 황로학(黃老學)에 조예가 깊었다. ()나라의 정승이 된 조참(曹參)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는 정치의 요체를 묻자, 개공(蓋公)치도(治道)는 청정(淸淨)과 무위(無爲)를 귀하게 여기니, 이렇게 하면 백성들이 절로 안정된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조참(曹參)이 이 말을 따르니 제()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왕문고(王文誥)의 소문충공시편주집성총안(蘇文忠公詩編注集成總案) 14권에 동파(東坡)는 희녕(熙寧) 9(1076) 정월에 황당(黃堂)의 북쪽에 정침(正寢: 사당)을 짓고 개공당(蓋公堂)이라 이름한 다음, 날마다 빈객들과 관리들과 함께 여기서 놀고 휴식하였으나 거처하지는 않았는데, 개공당기(蓋公堂記)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내가 살펴보건대, 희녕(熙寧) 연간에 신법(新法)이 시행되어 백성들이 온갖 재물을 수탈당하여 거의 죽게 되었으니, 이는 호랑이와 이리 같았던 진()나라의 폭정(暴政)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라는 이미 멸망하였으니, ()나라 또한 장차 이로 말미암아 패망할 듯하였다. 이때 동파공(東坡公)이 백성들과 함께 휴식하고자 하였으나, 자신이 그러한 지위에 있지 않아서 백성들을 이끌어 구제하지 못함을 한탄하고, 또 등용되는 재상들이 모두 적임자가 아님을 깊이 슬퍼하였다. 그러므로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의 어짊에 대해 거듭 경의를 표하였으니, 동파(東坡)가 개공당기(蓋公堂記)에서 말한 것들은 그 감개(感慨)함에 기탁한 것이 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개공청정[蓋公淸淨] () 나라 조참(曹參)이 제국(齊國)에 상()이 되어 가서 여러 학자를 모아 놓고 정치하는 방법을 물은 즉, 노자(老子)의 학()을 하는 개공(蓋公)이란 노인이 정치는 청정(淸淨)함을 위주(爲主)하여야 하오.[治道貴清淨]”라 하였다. 조참은 곧 그를 정당(正堂)에 모시고 스승으로 섬기었다.

개공치제[蓋公治齊] 개공(蓋公)은 한 나라 때의 교서(膠西) 사람이다. () 나라의 승상(丞相)이 된 조참(曹參)이 그가 황로(黃老)의 학문에 정통하다는 말을 듣고 치세(治世)의 방법을 자문하자, 개공은 정치하는 방도는 청정함을 귀하게 여기니, 이렇게 하면 백성들이 저절로 안정된다.[治道貴清淨而民自定]”고 하였다. 이에 조참이 공관(公館)을 비워 그를 머물게 하고 그의 말대로 하였더니, 9년 만에 나라가 안정되었고 어진 재상으로 칭송받게 되었다. <史記 卷54 曹相國世家>

개공치황로[蓋公治黃老] 개공(蓋公)은 한()나라 초기 사람으로 황로(黃老)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하였다. 조참(曹參)이 제()나라 국상(國相)이 되었는데, 교서(膠西)에 개공(蓋公)이라는 분이 있어 황(()의 학설을 공부하였다는 말을 듣고 많은 폐백을 보내어 초청하였다. 개공(蓋公)이 와서 정치하는 방도는 깨끗하고 그윽함을 귀하게 여기면 백성들이 스스로 안정된다.[治道貴清淨而民自定]”라고 말하였는데, 조참(曹參)이 이를 따르니, ()나라가 크게 다스려졌다. <史記 曹相國世家><蓋公堂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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