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옥姜獄, 강옹絳雍, 강와僵臥, 강와선족僵臥跣足, 강와원안僵臥袁安
❍ 강옥[姜獄] 소현세자(昭顯世子)의 빈(嬪) 강씨(姜氏)의 옥사. 1645년에 세자가 인조의 미움을 받다가 죽자, 소의(昭儀) 조씨(趙氏)의 무고로 조씨에 대한 저주 사건의 배후자로 지목되었고, 1646년에 어선(御膳)에 독약을 넣은 사건이 일어났을 적에도 조씨가 이를 강씨의 소행이라고 무고하여 강씨를 후원 별당(後苑別堂)에 유폐시켰다가 사사(賜死)하게 한 일을 말한다.
❍ 강옹[絳雍] 강(絳)은 진(晉)나라 서울이고, 옹(雍)은 진(秦)나라 서울이다. 중이(重耳)가 초(楚)나라를 거쳐 진(秦)나라에 가서 목공(穆公)의 도움으로 19년 만에 고국인 진(晉)나라로 돌아간 뒤에, 제 환공(齊桓公)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제후(諸侯)의 패자(覇者)가 된 고사가 전한다.
❍ 강와[僵臥] 누워서 일어나지 않다. 육유(陸游)의 시 십일월사일풍우대작(十一月四日風雨大作) 기이(其二)에 “적적한 벽지에 누워서도 슬퍼하는 기색 없이, 변함없이 나라 위한 변경의 일만 생각하네.[僵臥孤村不自哀 尙思爲國戍輪臺]”라고 하였다.
❍ 강와선족[僵臥跣足] 드러누웠는다[僵臥]는 것은, 후한(後漢)의 명상(名相) 원안(袁安)이 일찍이 미천했을 때, 한번은 낙양(洛陽)에 큰 눈이 내려서 낙양 영(洛陽令)이 친히 민가(民家)를 순행하다 보니, 원안의 집만 유독 눈도 치우지 않은 채 방 안에 가만히 드러누워서 일어나지 않았던 데서 온 말이고, 맨발을 벗었다[跣足]는 것은, 삼국(三國) 시대 위(魏)의 고사(高士) 초선(焦先)이 ‘풀을 엮어서 옷을 만들어 입고, 두건도 쓰지 않고 맨발로 다녔다.[結草以爲裳 科頭跣足]’는 데서 온 말이다.
❍ 강와원안[僵臥袁安] 후한(後漢)의 명상(名相) 원안(袁安)이 일찍이 미천했을 때 한번은 낙양(洛陽)에 큰 눈이 왔다. 낙양 영(洛陽令)이 민가를 순행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눈을 치우고 나와서 걸식(乞食)을 하는데 원안의 집만 유독 눈이 치워져 있지 않았다. 사람을 시켜 눈을 치우고 들어가 보았더니 원안이 방 안에 누워 있기에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묻자, 말하기를 “큰 눈이 와서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는 때에 남에게 요구를 해서는 안 된다.[大雪人皆餓 不宜干人]”고 하므로, 낙양 영이 그를 어질게 여겨 효렴(孝廉)으로 천거했던 고사가 있다. 전하여 곤궁한 처지에 절조를 굳게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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