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왕康王, 강왕곡렴수康王谷簾水, 강왕길복康王吉服, 강왕불우康王不遇, 강왕회마수康王回馬首

강왕[康王]  이름은 소(). ()나라 공왕(恭王)의 아들이다.

강왕[康王]  ()나라 제3대 왕이며 성왕(成王)의 아들이다. 성왕부터 강왕으로 이어지는 주나라 초기 40여 년을 성강지치(成康之治)라고 한다. 형벌을 사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태평했다고 한다.

강왕곡렴수[康王谷簾水]  중국 강서(江西) 성자현(星子縣) 서쪽 강왕곡(康王谷)에 염수(簾水)가 있는데 그 물줄기가 발과 같이 바위에 퍼져서 흘러내린다. 육우(陸羽)는 그 물을 천하의 제일이라고 품평하였다.

강왕길복[康王吉服 주 성왕(周成王)이 죽자 강왕(康王)이 상복(喪服)을 입었다가 다시 길복(吉服)으로 갈아입고 즉위식을 거행하여 군신(群臣)의 하례를 받은 다음 다시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이 일에 대해 소식(蘇軾), 성왕이 죽어 장례도 치르기 전에 군신(君臣)이 모두 길복을 입는 것은 예()가 아니고, 변례라고 할 수도 없으며, 삼년상 기간 중에 상복을 벗고 길복을 입는 것은 어느 때이든 타당하지 않으니 주공(周公)이 살아 있었다면 필시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다. 주희도 강왕이 참최복을 벗고 면복(冕服)을 입은 것만은 예가 아니라고 하였다. <書經集傳 康王之誥>

강왕불우[康王不遇]  좋은 물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강왕(康王)은 초()나라의 강왕이다. 강왕이 진()나라의 장수인 왕전(王翦)에게 쫓겨 지금의 강서성(江西省) 성자현(星子縣) 서쪽에 있는 염수(簾水)가 흐르는 골짜기로 숨어들었는데, 이를 인하여 후대에 이 골짜기를 강왕곡(康王谷)이라고 하였다. 이 골짜기에 있는 염수는 그 물줄기가 발과 같이 바위에 퍼져서 흘러내리는데, 다신(茶神)으로 불렸던 당나라의 육우(陸羽)는 이 물을 천하의 제일이라고 품평하였다.

강왕주전거[降王走傳車 강왕(降王)은 투항한 왕 곧 유선(劉禪)이고, 전거(傳車)는 역거(驛車)이다. 촉지(蜀志) 후주전(後主傳)등애(鄧艾)가 성() 북쪽에 이르자, 후주(後主)가 널을 수레에 싣고 스스로 결박한 채 군루문(軍壘門)에 나아갔다. 등애(鄧艾)가 결박을 풀고 널을 불사른 다음 맞이하여 만나보고, 명에 따라 후주를 표기장군(驃騎將軍)에 제수하였다. 이듬해 후주가 가족을 데리고 동쪽으로 옮겨 낙양에 이르렀다.[鄧艾之城北 後主輿櫬自縛 詣軍壘門 艾解縛焚櫬 延請相見 因承制拜後主爲驃騎將軍 明年 後主擧家東遷至洛陽]”라는 내용이 있다.

강왕회마수[康王回馬首]  강왕(康王)은 휘종(徽宗)의 아홉째 아들인데, () 나라 군사가 송() 나라에 침입하매 송 나라에서 땅을 베어 주고 화의(和議)를 하려고 하니, 금 나라에서 강왕(康王)을 오라 하였다. 강왕이 처음 갔다가 돌아와서 두 번 가려 하다가 일이 틀린 것을 보고 말을 돌렸다. 금 나라에서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을 잡아가니, 강왕이 강남(江南)에 옮겨서 임금이 되었다. 이가 곧 고종(高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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