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시姜詩, 강시상속僵尸相屬, 강시종講時鐘, 강시지륙絳市之戮, 강식주포치격호예薑食酒脯絺綌狐麑

강시[姜詩]  강시는 낙() 지방의 사람이다.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72강시의 어머니가 산 물고기를 좋아하였는데, 골짜기에서 샘물이 솟아 나오더니, 오후가 되면 잉어 두 마리가 나왔으므로 두 어머니에게 반찬으로 해 드렸다. 그의 어머니가 식사를 할 때마다 이웃의 어머니와 같이 먹었기 때문에 두 어머니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강시[姜詩]  후한 때의 효자(孝子)인데, 그의 아내 또한 남편보다 효성이 더 지극하여 시어머니를 극진히 섬기었다. 시어머니가 생선회를 좋아하였으므로, 부부가 항상 회를 장만하여 봉양하였더니, 어느날 갑자기 집 옆에서 샘물이 솟아나왔는데, 물맛이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강물과 같았고, 거기에는 매일 아침마다 잉어 두 마리씩 뛰어나왔으므로 항상 이것으로 시어머니를 봉양했다고 한다. 적미군(赤眉軍)이 강시의 마을을 지날 때 대효(大孝)를 놀라게 하면 귀신의 노여움을 살지도 모른다.”라고 하며 병기를 내려놓게 하였다고 한다. <後漢書 卷114 列女傳 姜詩妻>

강시[姜詩 이십사효(二十四孝)에 나오는 이야기로, 강시(姜詩)는 후한의 효자인데, 아내 방씨(龐氏)와 더불어 어머니를 극진히 섬겼다. 어머니가 강물로 끓인 차를 좋아하기에 매일 멀리 있는 강가에 가서 찻물을 길어오고, 또 생선회를 좋아하여 강가로 가서 물고기를 잡아왔는데, 늘 즐거운 마음으로 효도를 다하며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강물 맛과 똑같은 샘물이 솟아오르고 거기서 매일 잉어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이를 일러 용천약어(湧泉躍魚)’라고 한다.

강시[姜詩]  후한 때 강시(姜詩)는 지극한 효성으로 모친을 섬겼다. 그는 아내와 함께 모친이 좋아하는 생선회를 항상 장만하여 드렸고, 또 그 모친이 강수(江水)를 즐겨 마셨던 까닭에 그의 아내가 항상 집에서 6, 7리나 떨어진 강까지 나가서 물을 길어 오곤 하였다. 그러다 한번은 강풍을 만나서 제때에 돌아오지 못하여 그 모친이 갈증을 느끼자, 강시가 마침내 그의 아내를 내보냈는데 그 아내는 이웃집에 머무르면서 밤낮으로 부지런히 길쌈을 하였다. 하루는 그 집 옆에서 갑자기 샘이 솟아나오기 시작하여 아침마다 그 샘에서 잉어 두 마리가 나와 이것으로 항상 그 모친을 봉양했다고 한다. <後漢書 卷84 列女傳 姜詩妻>

강시상속[僵尸相屬]  죽은 시체가 서로 이어짐을 이른다.

강시종[講時鐘]  고승(高僧)이 강경설법(講經說法)할 때에 치는 종소리를 말한다. 장적(張籍)의 시 기이발(寄李渤)오도계의 어귀엔 철쭉꽃이 빨갛게 피고, 숭양사 안에선 강연할 때 종이 울리리.[五度谿頭躑躅紅 嵩陽寺裏講時鐘]”라고 하였다.

강시지륙[絳市之戮]  강시(絳市)의 형벌. 강시는 춘추 시대 진() 나라의 지명(地名)이다. () 나라 선공(宣公) 때 진() 나라 사람들이 진() 나라의 첩자(諜者)를 붙잡아 강시에서 죽였는데 엿새 만에 다시 소생한 일이 있었다. <春秋左氏傳 宣公8>

강식[彊識 강식(彊識)는 강기(強記)와 같은 말로 기억을 잘한다는 말이다.

강식[強食 많이 먹으라고 강권(強勸)함이다.

강식[强食]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뜻이 있고, 또는 아무리 먹기 싫어도 몸을 생각해서 억지로 음식을 먹는 의미로도 쓰인다.

강식주포치격호예[薑食酒脯絺綌狐麑]  강식(薑食)은 논어(論語) 향당(鄕黨)생강 자시는 것을 끊이지 않았다.[不撤薑食]”라고 한 데서 온 말이고, 주포(酒脯)파는 술과 시장의 포를 먹지 않았다.[沽酒市脯不食]”라고 한데서 온 말이고, 치격(絺綌)더울 때는 홑 칡베옷과 굵은 칡베옷을 반드시 껴입었다.[當暑 衫絺綌 必表而出之]”라고 한 데서 온 말이고, 호예(狐麑)흰옷엔 사슴 갖옷이요, 누른 옷엔 여우 갖옷을 입었다.[素衣麑裘 黃衣狐裘]”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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