夏日李公見訪하일이공견방 / 여름날 이염공이 방문하다 / 杜甫두보

遠林暑氣薄[원림서기박]  도심서 먼 숲이라 더위 덜하니

公子過我游[공자과아유]  공자께서 나를 찾아 놀러오셨네

貧居類村塢[빈거유촌오]  가난한 살림살이 시골집 같고

僻近城南樓[벽근성남루]  외지기는 성 남쪽 망루 근처라

旁舍頗淳樸[방사파순박]  이웃 사람들은 퍽 순박하여서

所願亦易求[소원역이구]  아쉬운 것 있어도 구하기 쉽네

隔屋喚西家[격옥문서가]  집 너머 서쪽 집 사람을 불러

借問有酒不[차문유주불]  가진 술 혹 없는지 물어보니

牆頭過濁醪[장두과탁료]  담머리로 막걸리를 건네주네

展席俯長流[전석부장류]  자리 펴고 긴 물줄기 굽어보니

淸風左右至[청풍좌우지]  맑은 바람 좌우에서 불어와

客意已驚秋[객의이경추]  객은 벌써 가을인가 놀랐으리

巢多衆鳥鬪[소다중조투]  둥지 많아 뭇 새들이 다투고

葉密鳴蟬稠[엽밀명선조]  잎 무성해 우는 매미 바글바글

苦道此物聒[고도차물괄]  요란한 소리들 듣기 괴로운데

孰謂吾廬幽[숙어오려유]  누가 내 집을 그윽타 이르는가

水花晩色靜[수화만색정]  연꽃 핀 저녁풍경 맑고 고요함이

庶足充淹留[서족충엄류]  손 더 잡아두기에는 충분하리니

預恐樽中盡[예공준중진]  술동이에 술이 빌까 지레 두려워

更起爲君謀[경기위군모]  자꾸 일어나 그대에게 마음을 쓰네

 

<夏日李公見訪하일이공견방 / 여름날 이염공이 방문하다 / 杜甫두보 : 古文眞寶고문진보>

 

이가령(李家令)이 방문해 주다[李家令見訪]’라고 되어 있는 본()도 있다.

 

두보[杜甫] 성당기(盛唐期)의 시인으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야로(少陵野老), 두릉야로(杜陵野老), 두릉포의(杜陵布衣) 등이 있다. 양양(襄陽) 지방 출신으로 과거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40대인 천보(天寶) 14(755)에야 비로소 벼슬길에 오르게 된다. 안녹산(安祿山)의 난 당시 장안에서 반군에게 잡혔다가 탈출, 숙종(肅宗)의 진영에 합류하여 좌습유(左拾遺)와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을 지낸 적이 있어서 사람들이 그를 두습유(杜拾遺), 두공부(杜工部) 등으로 불렀고, 또 장안성 밖 소릉(少陵)의 초당(草堂)에서 지낸 적이 있기 때문에 두소릉(杜少陵), 두초당(杜草堂)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는 시선(詩仙) 이백(李白)과 함께 이두(李杜)로 불렸는데, 두목(杜牧)과 이상은(李商隱)의 합칭인 소이두(小李杜)와 구별하기 위해 대이두(大李杜)라고도 부른다. 문학을 발판 삼아 벼슬로 나아가려던 그의 꿈이 큰 성취를 이루지 못함으로써 짧은 한때를 빼고는 평생을 가난과 병으로 고생을 겪어야 했다. 중국의 서북 지역을 유랑하다가 결국 병사했다. 벼슬살이와 달리 문학, 특히 시에서 이룬 성취가 대단하였다. 남긴 시가 1500여 수에 달하며 작품집으로 두공부집(杜工部集)이 있다. 후세 사람들에게 그 자신은 시성(詩聖)으로, 또 그의 시는 시사(詩史)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이공[李公] 이공(李公)은 이염(李炎)으로 종실(宗室)인 채왕(蔡王) 이방(李房)의 아들이다. 이때(天寶천보 13) 이염(李炎)이 태자가령(太子家令)이 되었다.

촌오[村塢] 촌락. 시골마을. 산촌. 산이나 언덕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 두보(杜甫)의 시 발낭중(發閬中)앞에는 독사요 뒤에는 맹호 있으니, 종일토록 시냇물을 따라 가도 마을 하나 없구나.[前有毒蛇後猛虎 溪行盡日無村塢]”라고 하였다.

공자[公子] 제후(諸候)의 자제(子弟). 관료나 부귀한 집안의 자제. 귀한 집안의 나이 어린 자제.

격옥[隔屋] 몇 집 떨어진 이웃. 먼 이웃.

차문[借問] 남에게 모르는 것을 물음. 찾아 물음. 상대자(相對者)가 없이 허청대고 가정(假定)하여 물음. 두목(杜牧)의 시 청명(淸明)술집이 어디 있는가 물어보니, 목동은 멀리 살구꽃 핀 마을을 가리키네.[借問酒家何處有 牧童遙指杏花村]”라고 한 구절이 있다.

탁료[濁醪] 막걸리. 탁주(濁酒). 빛깔이 탁한 술. 육유(陸游)의 시() 추야(秋夜)늙고 병들어 초라하니 성에 들지 못하고, 막걸리와 거친 밥으로 여생을 보내네.[老病龍鍾不入城 濁醪麤飯餞餘生]”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 회일심최집이봉(晦日尋崔戢李封)흐린 술에 묘한 이치 있나니, 성쇠가 무쌍함을 위로하리라.[濁醪有妙理 庶用慰浮沈]”라고 하였고, 주희(朱熹) 취하축융봉(醉下祝融峰)막걸리 석 잔에 호탕한 기분이 일어, 시 읊으며 축융봉을 나는 듯 내려오네.[濁酒三盃豪氣發 朗吟飛下祝融峰]”라고 하였다.

고도[] 삼도(三道)의 하나. 번뇌로 말미암아 짓는 업 때문에 받게 되는 삼계 육도(三界六道)의 고과(苦果)를 이른다. 삼도(三道)는 혹도(惑道), 업도(業道), 고도(苦道)이다.

삼도[三道] 삼도(三道)란 불상 목 주위에 표현된 3개의 주름으로, 생사(生死)을 윤회하는 인과(因果)를 나타내며 혹도(惑道) 또는 번뇌도(煩惱道), 업도(業道), 고도(苦道)를 의미한다. 원만하고 광대한 불신(佛身)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형식으로 보통 불, 보살상에서 볼 수 있다.

수화[水花] 연화(蓮花)를 일명(一名) 수화(水花)라 한다. 연꽃은 하화(荷花)라고도 하는데 옛날에는 부용(芙蓉), 수화(水花), 부거(芙渠)로 부르기도 하였다. 또 고금주(古今注)부거의 명칭을 하화(荷華수지(水芝택지(澤芝수화(水花)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또한 부평(浮萍)을 달리 수화(水花수백(水白수소(水蘇수평(水萍)이라 부르기도 한다. 달리 떨어지는 물방울이 만들어낸 꽃의 모양을 이르기도 한다.

만색[晩色] 해 질 무렵의 경치. 날이 저물어 가는 어스레한 빛. 철이 늦은 때의 경치(景致).

엄류[淹留] 오랫동안 머무름. 엄박(淹泊). 막히어 나아가지 못함. 두보(杜甫)의 진주잡시(秦州雜詩)서쪽으로 와서도 봉화를 물으니, 마음이 꺾여 여기 머물도다.[西征問烽火 心折此淹留]”라고 하였고, 도연명(陶淵明, 陶潛)의 음주시(飮酒詩) 20수 중 13수에 세월 흐르고 흘러 나이 사십 바라보니, 제자리에 머문 채 이룬 것이 없구나.[行行向不惑 淹留遂無成]”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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