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로羌虜, 강로絳老, 강록講錄, 강록江麓, 강록江祿, 강뢰江瀨

강로[羌虜] 서하(西夏)를 멸칭(蔑稱)한 말이다. 소철(蘇轍) 논서사상(論西事狀)강로(羌虜)의 성질은 부수(復讐) 집념이 강하니 헤아리건대 보복하려는 마음을 하루도 잊지 못하였을 것이다.[羌虜之性, 重于復讐, 計其思報之心, 未嘗一日忘也.]”라고 하였다.

강로[絳老] ()나라 강현(絳縣)의 어떤 노인(老人)이 성()을 축조하는 부역에 나왔다. 관리가 그를 보고 나이를 묻자 신은 소인(小人)이어서 나이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신이 태어나던 해의 정월 초하루가 갑자일이었고, 그로부터 445번의 갑자일이 지났는데, 최근의 마지막 갑자일은 20일이 지났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것을 계산해 보니 73세의 나이였다. 진나라의 권력자인 조맹(趙孟)이 그 노인을 불러 사죄하고 토지와 관직을 주어 편히 살게 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30>

강로[絳老] 강현노인(絳縣老人)의 생략형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을 가리킨다. 좌전(左傳) 양공삼십년(襄公三十年)“2월 스무 이튿날, 진도공 부인이 기국의 성을 쌓는 역졸들을 불러 밥을 먹게 했다. 강현 사람 중에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복역을 할 아들이 없는데도 부인에게 밥을 받아 먹었다. 어떤 사람이 그의 나이가 궁금해서 나이를 말해보라고 하자 그가 저는 제 나이를 모릅니다. 제가 태어나던 해 정월 초하룻날이 갑자일이었는데, 벌써 445개 갑자일이 지났습니다. 최근에 있었던 갑자일이 오늘로 딱 스무날이 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관리들이 조정으로 달려가 묻자 사광이 노나라 숙중혜백이 승광에서 각성자를 만난 바로 그 해다. 이 해에 북쪽의 오랑캐들이 노나라를 침공했는데 숙손장숙이 함읍에서 이들을 물리치고 장적교여와 훼, 그리고 표를 사로잡았고, 포로의 이름을 따 자식들의 이름을 지었다. 지금으로부터 칠십삼년 전 일이다.’라고 하였다.[二月癸未, 晉悼夫人食輿人之城杞者. 絳縣人或長年矣, 無子而往與于食. 有與疑年, 使之年. 曰臣小人也, 不知紀年. 臣生之歲, 正月甲子朔, 四百有四十五甲子矣, 其季於今三之一也. 吏徒問諸朝, 師曠曰魯叔仲惠伯會卻成子於承匡之歲也. 是歲也, 狄伐魯. 叔孫莊叔於是乎敗狄於鹹, 獲長狄僑如及虺也豹也, 而皆以名其子. 七十三年矣.]”고 한 데서 보인다.

강록[講錄] 이재(李栽)의 주서강록간보(朱書講錄刊補)를 이른다. 주자서(朱子書)의 종래 해석에 대해 잘못된 점이나 보충할 점을 밀암(密菴) 이재(李栽)가 수정, 증보한 책이다.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가 간행된 이후 이황(李滉)이 주자서절요기의(朱子書節要記疑)를 내고 이를 보충하여 이덕홍(李德弘)이 주자서절요강록(朱子書節要講錄)을 냈는데, 이 책이 잘못된 부분이 많아 학자들을 오도할 여지가 있다고 하여 그 수정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에 송시열(宋時烈)이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를 내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재(李栽)가 주서강록간보(朱書講錄刊補)를 편찬한 것이다. 본서는 이재가 저술하였으나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교정되어 1785(정조9)63책으로 간행되었다.

강록[江麓] 강기슭. 강가에 있는 산기슭을 가리킨다.

강록[江祿] 강록(江祿)은 자()가 언하(彦遐)로 어려서 학문에 열심이었고 문장을 잘 썼으며, 지위는 태자세마(太子洗馬)와 상동왕(湘東王)의 녹사참군(錄事參軍)에 올랐으며, 뒤에 당후(唐侯)의 상()이 되었다가 죽었다. 금루자(金樓子) 취서(聚書)에 일찍이 강록(江錄)이 있는 곳에 가서 책을 베껴 써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록(江祿)에 대한 기록은 남사(南史)에 수록된 그의 고조부(高祖父) 강이(江夷)의 전()에 부속(附屬)되어 있다. 참고로 안씨가훈(顔氏家訓) 5편 치가(治家)제양(濟陽) 사람 강록(江祿)은 책을 읽다가 채 다 읽기 전에 비록 급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말아놓고 묶어서 정리한 다음에야 일어났으므로, 헐거나 파손되는 법이 없어 사람들은 그가 빌려달라고 해도 꺼리지 않았다.[濟陽江祿, 讀書未竟, 雖有急速, 必待卷束整齊, 然後得起, 故無損敗, 人不厭其求假焉.]”라고 하였다.

강뢰[江瀨] 강여울이다. 남조(南朝) ()나라 사장(謝莊)의 월부(月賦)국화는 산꼭대기에 향기를 흩고, 기러기는 강여울에 울음을 흘리네.[菊散芳於山椒 鴈流哀於江瀨]”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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