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내외綱紀內外, 강기불립綱紀不立, 강기사방綱紀四方, 강기생降其栍, 강기성强幾聖, 강기숙정綱紀肅正

강기내외 무순문무[綱紀內外 撫循文武] 내외에 기강(紀綱)을 세우고 문무백관의 마음을 잘 어루만져 복종하게 함을 이른다. 통감절요(通鑑節要) 32 남북조(南北朝) 양기(梁紀)우문호(宇文護)가 내외에 기강(紀綱)을 세워 문무백관을 어루만지니, 인심이 마침내 안정되었다.[護綱紀內外, 撫循文武, 人心遂安.]”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강기불립[綱紀不立] 기강(紀綱)이 서지 않음을 이른다. 통감절요(通鑑節要) 30 진기(晉紀) 안황제(安皇帝)이때 진()나라의 정사가 해이해져 기강(紀綱)이 서지 않고 호족(豪族)들이 교만하고 방자해서 서민(庶民)들이 곤궁하였으며 여기에 사마원현(司馬元顯)의 정사와 명령이 서로 모순되기까지 하니, 환현(桓玄)이 비록 정리하여 바로잡고자 하였으나 법조문(法條文)이 번거롭고 세밀하여 사람들이 따르지 않았다.[時晉政寬弛, 綱紀不立, 豪傑凌縱, 小民窮困. 重以司馬元顯政令違舛, 桓玄雖欲釐政, 而科條煩密, 眾莫之從.]”라고 한 데서 봉니다.

강기사방[綱紀四方] 전국을 다스림을 이른다. 시경(詩經) 역복(棫樸)잘 다듬은 문장이요, 금옥과 같은 바탕이로다. 힘쓰고 힘쓰는 우리 왕이시여! 사방의 기강이 되시도다.[追琢其章 金玉其相 勉勉我王 綱紀四方]”라고 하였다.

강기생[降其栍]()을 낮춘다.’, ‘낮은 점수의 강생(講栍)을 낸다.’는 말이다. ()은 강생(講栍)으로, () 시험에서 시험관이 응시자의 성적을 매길 때 쓰는, 대나무 등으로 만든 찌이다. 강첨(講籤강주(講籌)라고도 한다[응시자가 강()할 부분을 정하기 위해 경서의 글귀를 쓰거나 해당 부분을 표시하여 제비뽑기하는 도구와는 다른 것임]. 찌 하나에 ()’·‘()’·‘()’·‘()’ 중 한 글자씩 써넣어 각 시험관 앞에 한 벌씩 놓으면, 각 시험관은 응시자가 강()을 끝낼 때마다 그 중 하나를 내어 점수를 준다. 응시자의 최종 점수는 각 시험관이 낸 강첨 중에 다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정해지며, 이를 답안지[문의(文義)에 대한 문답을 필담으로 진행한 종이]의 말미에 기록한다. ‘()’ 자가 쓰여진 강생은 통생(通栍상생(上栍), ‘()’ 자가 쓰여진 강생은 약생(略栍중생(中栍), ‘()’ 자가 쓰여진 강생은 조생(粗栍하생(下栍)이라고 하므로 점수가 낮은 강생을 내는 것을 강기생(降其栍)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慵齋叢話 卷2> <經世遺表 卷15 春官修制 選科擧之規2>

강기성[强幾聖] 강기성(强幾聖)은 전당(錢塘) 사람으로 이름은 지()이다. 송 인종(宋仁宗) 경력(慶曆) 연간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고을 수령을 네 번, 중앙관청의 하급관리를 세 번 역임한 뒤에 상서사부랑중(尙書祠部郞中)을 지내고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함으로써 일생을 어렵게 보냈다. 그러나 문장이 뛰어나 당시에 유명하였으며, 유학경전을 잘 알아야 문장이 깊이가 있고 순수하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강기숙정[綱紀肅正] 법강(法綱)과 풍기(風氣)를 엄숙(嚴肅)하고 바르게 함. 나라를 다스리는 규율을 바로잡음. 법령, 명령, 규칙 풍습 등을 엄격히 지키게 하는 것을 말한다. 참고로 후한(後漢) 때 범방(范滂)이 어지러운 기주(冀州)를 규찰하여 완악한 수령들의 인수(印綬)를 풀어 파직시키고 기강(紀綱)을 숙정(肅正)한 고사(故事)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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