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랍絳蠟, 강랑재진江郞才盡, 강랑채필江郞彩筆, 강랑한부江郞恨賦, 강래득중剛來得中, 강래불궁剛來不窮

강랍[絳蠟] 홍랍(紅蠟). 붉게 물들인 초. 붉게 타는 촛불을 가리킨다.

강랑금일척[江郞錦一尺] 남조(南朝) 때의 문장가 강엄(江淹)이 만년(晩年)에 꿈속에서 장경양(張景陽)이라는 사람에게 비단폭을 돌려준 뒤로부터 문장이 갑자기 퇴보하기 시작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南史 卷59 江淹列傳>

강랑재고진[江郞才告盡] 강랑은 양() 나라 때 문장가 강엄(江淹)을 가리키는데, 그가 본디 문장으로 크게 이름을 드날렸으나, 꿈에 오색(五色)의 붓을 곽박(郭璞)에게 돌려주고 나서 문재(文才)를 상실했다고 한다.

강랑재진[江郞才盡] 강랑(江郞)의 재주가 다 했다는 말로, 학문상에 있어 한 차례 두각을 나타낸 후 퇴보함을 이르는 말이다. 강랑(江郞)은 중국 남조(南朝) ()나라 때의 문장가 강엄(江淹)을 가리킨다. 그가 어릴 적에 꿈속에서 자칭 곽박(郭璞)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오색 붓을 받고는 문장이 크게 진보하였는데, 만년에 야정(冶亭)이라는 정자에서 자다가 곽박(郭璞)이 다시 붓을 회수해 가는 꿈을 꾼 뒤로는 좋은 시구(詩句)가 전혀 나오지 않았고, 이에 세상 사람들이 그를 두고 재주가 다하였다.[江郞才盡]”라고 하였다. <南史 卷59 江淹列傳>

강랑채필[江郞彩筆] 강랑은 남조(南朝) () 나라 때 문장가 강엄(江淹)을 이르고, 채필(彩筆)은 채색 붓으로 문학적 재능이 매우 뛰어남을 비유한 말이다. 남조(南朝) ()의 강엄(江淹)이 어릴 적에 자칭 곽박(郭璞)이란 사람이 오색필(五色筆)을 주는 꿈을 꾼 뒤로 문장이 크게 진보하였는데, 만년에 야정(冶亭)에서 잠을 자다가 그가 다시 붓을 회수해 가는 꿈을 꾼 뒤로는 좋은 문장이 나오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南史 卷59 江淹列傳>

강랑한부[江郞恨賦] 강랑은 남조(南朝) 고성(考城) 사람 강엄(江淹)인데 자는 문통(文通)이고 벼슬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에 이르렀으며, 예릉후(醴陵侯)에 봉해졌다. 소시적부터 문예(文譽)가 있었으며 유명한 한부(恨賦)를 지었다.

강래득중[剛來得中] 송괘(訟卦) 단사(彖辭)()은 성실함이 있으나 막혀서 두려우니 중도에 맞으면 길함은 강()이 와서 중을 얻은 것이다.[訟有孚窒惕中吉 剛來而得中也]”라고 한 대목을 가리킨다.

강래불궁[剛來不窮] 양강(陽剛)이 하괘(下卦)인 구이(九二)로 와서 궁색하지 않다는 뜻이다. 환괘(渙卦) ()환이 형통함은 강()이 와서 궁색(窮塞)하지 않고, ()가 밖에서 자리를 얻어 위와 같이 하기 때문이다.[渙亨 剛來而不窮 柔得位乎外而上同]”라고 하였다. 이것에 대해 정이는 ()이 환이 된 까닭은 구()가 와서 이()에 거하고 육()이 올라가 사()에 거하기 때문이다. 강양(剛陽)이 옴에 아래에서 궁극하지 않아 처함이 중()을 얻고 유()가 감에 밖에서 정위(正位)를 얻어 위로 오()의 중()과 함께하니, ()에게 공손함이 바로 위와 함께하는 것이다.”라고 괘변을 설명하여 구이(九二)와 육사(六四)에 대한 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으나, 주희는 괘변이 본래 점괘(漸卦)로부터 왔으니, ()가 와서 이()에 거하여 중을 얻고 육()이 가서 삼()에 거하여 양구(陽九)의 자리를 얻어 위로 사()와 함께한다.”라고 하여 구이와 육삼(六三)에 대한 말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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