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순절江都殉節, 강도실절江都失節, 강도왕江都王, 강도왕건江都王建

강도순절[江都殉節강도(江都)는 강화도(江華島)를 이른다(朝鮮) 인조(仁祖) 15(1637)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강화도(江華島)가 청()나라 군사에게 함락되자 김상용(金尙容김익겸(金益兼권순장(權順長) 등과 윤선거(尹宣擧)의 아내 이씨(李氏)와 이정귀(李廷龜)의 아내 권씨(權氏), 김익겸(金益兼)의 어머니 서씨(徐氏) 등이 순절(殉節)함으로써 국가와 가문의 명예를 위해 절개를 지킨 것을 이른다. <仁祖實錄>

강도실절[江都失節]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강화도(江華島)로 피난한 윤선거(尹宣擧)가 만약 강도(江都)가 청군(淸軍)에게 함락되면 국가를 위하여 순절(殉節)할 것을 벗인 권장순(權長順김익겸(金益兼) 등과 약속하였으나, 이윽고 청군(淸軍)이 쳐들어와 강도가 함락되자, 친구 김익겸(金益兼권순장(權順長)이 모두 순절(殉節)하고 처() 이씨(李氏)도 목을 매 자살하였으나, 자기는 죽지 않고 평민의 복장으로 변장하고서 성을 탈출하여 목숨을 건진 일을 가리킨다. <仁祖實錄> <稗林 江都錄>

강도왕[江都王] 한 경제(漢景帝)의 아들 유비(劉非)를 가리킨다. 무제(武帝)가 즉위하자 유비는 황제의 형이었기 때문에 평소 교만하였다. 무제가 이 때문에 동중서(董仲舒)를 강도상(江都相)으로 파견하여 유비를 보좌하도록 했다. 동중서가 항상 예의로써 유비를 이끌어 유비가 매우 존경하였다.

강도왕[江都王] 당 태종(唐太宗)의 조카인 이서(李緖)이다. ()나라 장언원(張彥遠)의 역대명화기(歷代名畫記) 10강도왕 서()는 곽왕(霍王) 원궤(元軌)의 아들이며 태종 황제의 조카였다. 재주가 많고 글씨를 잘 썼으며 안마(鞍馬)를 잘 그리기로 유명하였다. 수공(垂拱) 연간에 관직이 금주자사(金州刺史)에 이르렀다.[江都王緖 霍王元軌之子 太宗皇帝猶子也 多才藝 善書 畫鞍馬擅名 垂拱中官至金州刺史]”고 하였다.

강도왕건[江都王建] 한 경제(漢景帝)의 작은아들 강도역왕(江都易王) 유비(劉非)의 아들 유건(劉建)을 말한다. 유비의 봉국을 물려받은 강도왕(江都王) ()은 극도로 황음무도하였다. 상중에 부친의 애첩과 동침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매들을 범하였으며, 궁녀를 발가벗겨 북을 치게 하기도 하고, 또는 허물이 있는 궁녀를 굶주린 이리에게 던져 주는 등 음란과 포학을 일삼았다. 자기의 죄를 두려워하여 회남왕(淮南王)과 형산왕(衡山王)이 모반을 꾀할 때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고하지 않고 비밀리에 병장기를 제작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모반이 발각되어 경사에 불려와 심문을 받고 자살했다. <漢書 景13王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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