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노彊弩, 강노絳老, 강노사조강해위동强弩射潮江海爲東, 강노지말세불능천노호强弩之末勢不能穿魯縞, 강능岡陵

❍ 강노[絳老춘추 시대에 기()나라의 성을 쌓을 적에 강현(絳縣)에서 동원된 노인이 있었는데그 노인 자신도 모르는 나이를 추산해 본 결과 2만 6660일로 73세에 해당되었으므로조무(趙武즉 조맹(趙孟)이 자기 고을 출신의 노인을 토목 공사에 동원한 책임을 지고서 사과하며 우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春秋左氏傳 襄公30>

강노[彊弩] 설문해자(說文解字)쇠뇌[]란 활에 자루[]가 달린 것이다.[弩 弓有臂者]”라고 하였다. 강노(彊弩)는 쇠뇌 중에서도 화살 10발을 1,200m(1,000) 거리에 있는 갑옷에 동시에 쏘아 뚫을 수 있는 규격의 대형 쇠뇌이다. 중노(中弩)6, 7발의 화살을 360~480m(3, 4백 보) 거리에 있는 갑옷에 동시에 쏘아 뚫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소노(小弩)는 화살 3, 4발을 동시에 쏠 수 있는 쇠뇌이다.

강노사조 강해위동[强弩射潮 江海爲東] 소식(蘇軾) 표충관비(表忠觀碑)하늘을 우러러 강물에 맹세하니 달과 별이 어두워졌고, 강한 쇠뇌로 조수를 쏘니 강해(江海)가 동쪽으로 흘렀네.[仰天誓江 月星晦蒙 强弩射潮 江海爲東]”라고 한 데서 보인다. 이에 대한 내용은 송사(宋史) 하거지(河渠志)후량(後梁) 개평(開平) 연간에 무숙왕(武肅王) 전류(錢鏐)가 방조제를 축조하는 공사를 시작하여 후조문(候潮門) 밖에 있었는데, 조수(潮水)가 밤낮으로 들이쳐 판축(版築)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전류(錢鏐)가 명하여 강노(彊弩) 수백 개로 조수(潮水)의 머리를 쏘게 하고 서산사(胥山祠)에 축원하니, 얼마 후에 조수(潮水)가 전당강(錢塘江)을 피하여 동쪽으로 흘러 서릉(西陵)에 부딪혔다.[梁開平中 錢武肅王 始築捍海塘 在候潮門外 潮水晝夜衝激 版築不就 因命彊弩數百 以射潮頭 又致禱胥山祠 旣而潮避錢塘 東擊西陵]”라고 보인다.

강노지말 세불능천노호[强弩之末 勢不能穿魯縞] 강한 쇠뇌의 화살도 끝에 가서 힘이 다하면 노()나라에서 나는 얇은 비단(緋緞)도 뚫을 수 없다는 말로, 아무리 유능한 사람도 형세가 궁해지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통감절요(通鑑節要) 후한기(後漢紀) 효헌황제 상(孝獻皇帝 上)조조(曹操)의 무리는 먼 길을 오느라 피폐하고, 듣건대 유예주(劉豫州)를 추격할 때에 경무장한 기병이 일주야(一晝夜)300여 리를 행군했다 하니, 이는 이른바 강한 쇠뇌의 화살이 끝에 가면 형세가 노()나라의 얇은 비단도 뚫지 못한다.’는 것이다.[曹操之衆 遠來疲敝 聞追豫州 輕騎一日一夜 行三百餘里 此所謂强弩之末 勢不能穿魯縞者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비단 중에 곱고 흰 것을 호()라 하니, 곡부(曲阜)의 풍속이 이 비단을 잘 만들어서 특히 가볍고 가늘었기 때문에 노호(魯縞)라고 한 것이다. 노호박(魯縞薄), 강노말(强弩末), 역궁노호(力窮魯縞).

강노지말 차불급노호[彊弩之末 且不及魯縞] 한서(漢書) 한안국전(韓安國傳)에 보이는 말로, 강한 것도 힘이 쇠하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서(漢書) 52 한안국전(韓安國傳)또한 신이 듣기로 폭풍의 끝자락 쇠미한 바람은 털과 깃털을 일으키지 못하고, 강한 쇠뇌의 끝자락 기세는 그 힘이 노나라에서 생산되는 얇은 비단을 뚫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且臣聞之, 衝風之衰, 不能起毛羽. 彊弩之末, 力不能入魯縞.]”라는 말이 있다.

강노지말력[彊弩之末力] 강노지말(强弩之末). 강력한 화살이 처음에는 힘차게 나가나 떨어질 때에는 아무런 힘도 없음. 이를 말력(末力)이라고 한다. 아무리 강()한 힘도 마지막에는 결국 쇠퇴(衰退)하고 만다는 의미(意味)이다.

강능[岡陵] 만수무강을 축원할 때 쓰는 표현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하늘이 당신을 편안하게 하사, 흥하지 않음이 없게 한지라, 마치 산인 양 언덕인 양, 높은 뫼나 큰 능인 양 흥성하고, 마치 냇물이 흐르고 흘러, 보태지 않음이 없는 것 같네.[天保定爾 以莫不興 如山如阜 如岡如陵 如川之方至 以莫不增]”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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