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추풍江東秋風, 강동편호降同編戶, 강동학사江東學士, 강동흥江東興, 강동흥취江東興趣

강동추풍[江東秋風] 후한(後漢) 오군(吳郡) 사람인 장한(張翰)이 낙양(洛陽)에서 벼슬하다가 천하가 어지러운 것을 보고 고향의 순챗국과 농어회가 생각나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한다. <晉書 卷92 文苑列傳 張翰> 이백(李白)의 시 강동으로 가는 장 사인을 전송하다[送張舍人之江東]’장한이 강동으로 가니, 바로 가을바람 부는 때였네.[張翰江東去, 正値秋風時.]”라고 하였다.

강동편호[降同編戶] 편호(編戶)는 천민의 호적에 편입된 일반 백성을 가리키는 바, 왕후(王侯)가 강등되어 일반 백성과 같아짐을 이른다통감절요(通鑑節要) 진기(晉紀) 효혜황제(孝惠皇帝), 유연(劉淵)의 종조(從祖)인 우현왕(右賢王) 유선(劉宣)이 집안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나라가 망한 이래로 우리 선우(單于)가 단지 빈 이름만 소유하여 다시는 한 자 되는 땅도 없고 그 나머지 왕후(王侯)는 강등되어 일반 백성들과 똑같이 호적에 편입되었다. 지금 우리 무리가 비록 쇠미해졌으나 그래도 2만 명을 밑돌지 않는데, 어찌 손을 놓고 사역당하여 이대로 백 년을 지낸단 말인가.[自漢亡以來, 我單于徒有虛號, 無復尺土, 自餘王侯, 降同編戶. 今吾衆雖衰, 猶不減二萬, 奈何斂手受役, 奄過百年.]”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강동학사[江東學士] ()나라 장한(張翰)을 말한다. 장한은 천하가 어지러움을 보고 항상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지녔는데, 낙양(洛陽)에 가을바람이 일어나자 곧 고향 오중(吳中)의 고채(菰菜)와 순갱(蓴羹)과 농어[鱸魚]를 생각하고 벼슬을 버리고 떠나갔다. <晉書 卷92 文苑傳 張翰列傳>

강동흥[江東興]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흥을 말한다. ()나라 때 오중(吳中) 출신 장한(張翰)은 자가 계응(季鷹)인데,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연(東曹掾)으로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자기 고향 강동(江東) 오중의 고채(菰菜)와 순챗국[蓴羹]과 송강(松江)의 농어회[鱸魚膾]가 생각나서 말하기를 인생은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한데, 어찌 수천 리 타관에서 벼슬에 얽매여 명성과 작위를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人生貴得適志, 何能羈宦數千里以要名爵乎?]”라 하고는 이에 가을바람이 부네 경치 좋은 이 시절, 오강의 강물에는 농어가 마침 살이 오르겠지. 삼천리나 멀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얻을 수 없어 한스럽게 하늘만 바라보는 슬픔이여.[秋風起兮佳景時, 吳江水兮鱸正肥. 三千里兮家未歸 恨難得兮仰天悲]”라고 노래부르고, 즉시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晉書 卷92 文苑列傳 張翰> 노회순갱(鱸膾蓴羹). 순로지사(蒓鱸之思). 순갱노회(蓴羹鱸膾).

강동흥취[江東興趣] 맑은 지조로 이름 높았던 진()나라 때 오중(吳中) 사람 장한(張翰)이 일찍이 낙양(洛陽)에 들어가 동조연(東曹掾)으로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을바람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자기 고향 오중의 순챗국[蓴羹]과 농어회[鱸鱠]가 생각나서 말하기를 인생은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중요한데, 어찌 수천 리 밖에서 벼슬에 얽매여 명작(名爵)을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라 하고,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晉書 卷92 張翰列傳> 장한은 그의 자()인 계응(季鷹)으로 많이 불렸는데, 그가 오군(吳郡) 출신이기 때문에 강동 보병(江東步兵)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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