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三戒 : 검지려黔之驢 / 검 땅의 당나귀 / 유종원柳宗元

() 땅에는 나귀가 없었는데, 어떤 일벌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귀 한 마리를 배에 실어 들여왔다.

들여와서 보니 쓸모가 없어 산기슭에 풀어놓았다.

호랑이가 보니 몸집이 북실북실하니 커 신령스런 동물로 보였다.

그래서 숲에 몸을 숨기고 엿보다가 차츰 나아가 가까이 가보았으나, 너무 조심스러워 어떤 존재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나귀가 한 차례 울어대자 호랑이는 크게 놀라 멀리 달아나 숨어서 나귀가 자기를 물어 죽일까봐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왔다 갔다 하면서 살펴보니, 특별한 능력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점차 그 울음소리가 귀에 익숙해지자, 나귀의 앞뒤로 접근해 보기는 하였으나 감히 건드리지는 못하였다.

호랑이가 점점 더 접근하여 보고 익숙해져 멋대로 기대고 부딪치고 장난을 치자, 나귀는 화를 참지 못하고 발길질을 하였다.

그러자 호랑이는 기뻐하며 속으로 생각하기를 기량이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하고는 펄쩍 뛰어올라 크게 울부짖고는 그 목덜미를 끊고 살점을 모두 먹은 뒤 가버렸다.

, 저 나귀는 겉모습이 큰 것이 덕이 있음직하고, 소리가 우렁찬 것이 능력이 있음직하여, 기량을 내보이지 않았을 때는 호랑이가 비록 용맹하여도 미심쩍고 두려워 감히 덤비지 못하다가 지금은 이처럼 되어버렸으니, 슬프도다.

 

<삼계三戒: 검지려黔之驢 / (귀주) 땅의 당나귀 / 유종원柳宗元>

 

黔無驢, 有好事者船載以入至則無可用, 放之山下. 虎見之, 尨然大物也, 以爲神. 蔽林間窺之, 稍出近之, 憖憖然莫相知. 他日, 驢一鳴, 虎大駭遠遁, 以爲且噬己也, 甚恐. 然往來視之, 覺無異. 益習其聲, 又近出前後, 終不敢搏. 稍近益狎, 蕩倚衝冒, 驢不勝怒, 蹄之. 虎因喜, 計之曰 : 技止此耳!因跳踉大, 斷其喉, 盡其肉, 乃去. ! 形之尨也類有德, 聲之宏也類有能. 向不出其技, 虎雖猛, 疑畏卒不敢取. 今若是焉, 悲夫! <柳宗元 / 三戒 / 黔之驢>

 

[삼계三戒 / 세 가지 경계할 일 / 병서幷序]

나는 항상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본색을 헤아릴 줄 모르고 외부의 사물을 빙자하여 함부로 재주 부리는 것을 싫어하였는데, 어떤 경우는 다른 사람의 세력에 의지하여 자신과 다른 부류를 벗으로 삼고, 어떤 경우는 하찮은 재주를 부려 강자를 격노하게 만드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기회를 틈타 제멋대로 횡포를 부린다. 그러나 결국에는 모두 큰 화를 당한다. 어떤 사람이 고라니, 나귀, 쥐 등 세 가지 동물에 관한 고사를 이야기 하여 주었는데, 그 일이 앞의 몇 가지 경우와 비슷했으므로 이 삼계(三戒)를 쓴다. [吾恒惡世之人, 不知推已之本, 而乘物以逞. 或依勢以干非其類, 出技以怒强, 竊時以肆暴, 然卒迨於禍. 有客談麋驢鼠三物. 似其事. 作三戒.]

 

[] 중국 남서부 사천성(四川省) 아래에 있는 귀주성(貴州省)의 약칭이다. 귀주에 있는 검령산(黔靈山)이 명승지로서 유명하기 때문에 검자를 따온 것이라 한다.

방연[尨然] 두툼하고 큰 모양.

은은연[憖憖然] 조심하고 삼가는 모양.

충모[衝冒] 어려운 고비를 무릅쓰고 달려듦.

도량[跳踉] 뛰어오르다. 도약하다. 펄쩍 뛰다. 깡충깡충 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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