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監察, 감찰어사이행監察御史裏行, 감창感愴, 감창酣暢, 감채蚶菜

감찰[監察] 감찰시어사(監察侍御史)의 약칭이다. 백관(百官)을 규찰하고 기타 농상형옥(農桑刑獄) 등을 감찰하였다. <唐書 百官志>

감찰[監察] 조선조 때 관리들의 비위를 감시하는 사헌부(司憲府)의 정6품 벼슬이다. 이들의 직무 중 하나가 관원들의 공식적인 모임에서 반열을 정돈시키는 것인데, 석전대제 때에도 이러한 목적으로 참가하였다. <六典條例 卷2 吏典 司憲府>

감찰어사[監察御史] 백관(百官)을 규찰(糾察)하고, 지방을 순회하며 형옥(刑獄)과 곡창(穀倉) 등을 살피는 일을 맡은 관명(官名)이다.

감찰어사이행[監察御史裏行] 어사대(御史臺)의 관명(官名)으로 감찰어사(監察御史)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직 정식 관원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행(裏行)이라 한 것이다. 신당서(新唐書) 백관지(百官志) 3권에 또 어사이행사(御史裏行使), 시어사이행사(侍御史裏行使), 전중이행사(殿中裏行使), 감찰이행사(監察裏行使)를 두었는데 아직 정관(正官)이 못 되었기 때문에 원수(員數)가 없다.”라고 하였다.

감창[感愴] 감모(感慕)하는 마음이 움직여 슬픔. 감격스럽고 슬픔을 이른다. 가례(家禮) 3 혼례(昏禮), 친영(親迎)을 하는 날 새벽에 신부 집에서 사당에 고하는 고사에 아무개의 몇째 딸 또는 아무 친족 아무개의 몇째 딸이 오늘 모관 모군에 사는 아무개에게 시집을 가니 감격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某之第幾女 若某親某之第幾女 將以今日歸于某官某郡姓名 不勝感愴]”라고 한 데서 보이고,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후주전(後主傳) 33의 배송지(裴松之)의 주()에 인용한 진()나라 습착치(習鑿齒)의 한진춘추(漢晉春秋)사마문왕(司馬昭)이 유선에게 연회를 베풀어주고는 예전의 촉나라 기녀들로 하여금 춤추게 하니, 옆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비통해하였는데, 유선만은 즐거워하며 태연자약하였다.[司馬文王 與禪宴 爲之作故蜀伎 旁人皆爲之感愴 而禪喜笑自若]”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감창[酣暢] 술에 취해 기분이 좋음. 술을 마시어 기분이 나른히 풀림, 또는 그런 기분. 기분이 좋다. 분방하다. 호쾌하다. 호방하다. 진서(晉書) 49 완수열전(阮脩列傳)항상 걸어 다닐 때 백전(百錢)을 지팡이 머리에 매달아놓았는데 술집에 이르면 곧 홀로 실컷 마셨다.[常步行 以百錢掛杖頭 至酒店 便獨酣暢]”라고 한 데서 보이고, 예기집설(禮記集說)당정(黨正)이 백성을 모아서 술을 마실 적에 처음에는 비록 예()대로 하지만 마시고 먹고 취하고 배부름에 미치면 또한 감창(酣暢)하여 즐기도록 해주니, 공자께서 이른바 하루 동안 즐거워하도록 하는 군주의 은택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黨正屬民飮酒, 始雖用禮, 及其飮食醉飽, 則亦縱其酣暢爲樂, 夫子所謂一日之澤是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감채[蚶菜] () 나라 때에 남해 지방에서 감채(蚶菜)를 진상(進上)하여 백성들의 폐해가 심하였는데, 공규(孔戣)가 민폐(民弊)가 심함을 글로 올려 감채의 진상을 없애도록 하였다. 명주(明州)는 해마다 감합(蚶蛤)이라는 참조개와 담채(淡菜)를 공물(貢物)로 바쳤는데 그것을 바다에서 경사(京師)까지 운송하느라 수많은 사람들이 고생하였다. () 헌종(憲宗) 12(817)에 화주자사(華州刺史)가 된 공규(孔戣)가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되자 이를 없애도록 상주(上奏)하여 이 세공(歲貢)을 없앴다. 헌종은 이 일을 기억해 두었다가 이후 영남 절도사(嶺南節度使) 최영(崔詠)이 죽고 자리가 비자 그를 후임으로 임명하였다. <新唐書 卷163 孔戣列傳><資治通鑑綱目 卷240 唐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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