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은류체感恩流涕, 감은사感恩寺, 감음감邯音酣, 감응납수感應納受, 감응도교感應道交, 감응암感應庵

감은류체[感恩流涕] 군주의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림을 이른다. 통감절요(通鑑節要) 당기(唐紀) 헌종(憲宗)제명(制命)이 위주(魏州)에 이르니, 전흥(田興)은 황제의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고 군사들은 고무되지 않는 자가 없었다.[制命至魏州, 興感恩流涕, 士衆無不鼓舞.]”라고 한 데서 보인다.

감은사[感恩寺] 현재의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에 있던 절이다. 신라 문무왕(文武王)이 왜병을 진압하기 위해 짓기 시작했는데 완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고 신문왕(神文王)682년에 완공하였다. 금당(金堂) 문지방 아래에 동쪽을 향해 구멍 하나를 열어 두었는데 용으로 변화한 문무왕의 출입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감음감[邯音酣] 은 음이 감(). 자치통감(資治通鑑) 7권 진기(秦紀) 이세황제(二世皇帝) 원년조 기사의 호삼성(胡三省) ()에 이르기를, ‘()은 하()와 감()의 반절이다.[, 下甘翻.]’고 하였고, 통감절요(通鑑節要) 이세황제(二世皇帝) 원년조 기사의 주()에도 감은 음이 감이다.[邯 音酣]’고 하였다. 우리말로는 이나 으로 나타나는데, 고려 강감찬(姜邯贊)의 예를 보면 으로 쓰임을 확인할 수 있음.

감응납수[感應納受] 사람이 불심(佛心)을 느끼고 부처가 이에 응()함으로써 부처와 중생(衆生)이 긴밀(緊密)히 맺어지는 일을 이른다.

감응도교[感應道交] 사람의 불심(佛心)을 느끼고 부처가 이에 응()하여 서로 통()함을 이른다.

감응암[感應庵] 경북 성주군 월항면 한개 마을 뒤 영취산(靈鷲山)에 있는 감응사(感應寺)를 말한다. 802년 체징(體澄)이 창건하였다. 신라의 애장왕은 늦게 아들을 얻었으나, 왕자는 날 때부터 눈이 나빠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밤 꿈에 나타난 승려의 지시로 이곳에 있는 약수를 구해 왕자의 눈을 씻게 하였더니 왕자는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왕은 약수의 은혜를 잊지 못하여 이곳에 절을 짓고 감응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 약수는 절 뒤 절벽의 바위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물로 옥류정(玉流井)이라 하며, 지금도 그 물맛이 달고 차가워 약수로 이름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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